[오늘의 설교]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교회

입력 2014-02-11 01:31


로마서 12장 15절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국내외에 재해가 났을 때 자주 사용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고통과 아픔, 상처를 입은 이웃들과 함께 울자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웃들을 향한 한국교회의 구제는 초기부터 진행돼 왔습니다. 이런 자선은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역사가 되어왔습니다.

사회복지시설 중 장애인복지시설의 52.4%, 아동복지시설의 78.4%, 노인복지시설의 43.6%, 호스피스기관의 85.6%. 성금 후원 중 수재의연금(1996∼2002년)의 68.8%, 대북 인도적 지원금(2001∼2003년)의 51.1%, 해외 구호금(1996∼2002년)의 64.9%. 2002∼2004년 사이 헌혈자의 91.6%, 골수기증자의 41.2%, 장기기증자의 44.3%, 재소자 자매결연의 52.3%, 불우 수용자 및 가족 돕기의 59.6%. 서해안 기름유출 방제작업에 동참한 자원봉사자의 70%를 우리 개신교가 담당했습니다.

이 통계 수치는 이원규 감신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서 나온 객관적 자료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이러한 사회적 기여와 공헌을 크리스천이나 일반 국민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양도 늘어야 하지만 그 질도 이젠 달라져야 합니다. 청소년들의 영원한 친구로 알려진 돈 보스코는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청소년이 그 사랑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느끼게 하고 공감하게 하는데 교회의 방식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긍휼은 히브리어로는 ‘헤세드’ 즉 자비입니다. 헬라어로는 ‘엘레오스’ 즉 ‘불쌍히 여기다’라는 뜻입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긍휼은 요즘 말로 공감을 뜻합니다. ‘엘레오스’의 영어 번역은 ‘컴패션(compassion)’입니다. 이 말은 ‘com(함께 하다)’과 ‘passion(고통)’의 합성어로 고통에 함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긍휼은 다른 한편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영어로 ‘이해하다’는 말은 ‘언더스탠딩(understanding)’ 즉, ‘under+standing’입니다. 다시 말해 낮은 자리에 서는 것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결국 공감한다는 것은 상대방 입장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교회에는 더 높은 공감지수가 요청됩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 진정성이 요구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교회가 몸담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주민을 단순히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기보다 인격을 가진 주체로 봐야 할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이웃을 단순히 객체나 대상으로 치부하기 쉽습니다. 사람은 인격체입니다. 따라서 아이들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밑바닥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먹을 것이 궁해도 자신들이 무시 받았다는 느낌을 받거나 자신들이 대상화·상품화됐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나눈 사랑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특별히 우는 자들과 함께 울기 위해 더 낮아지고 더 작아지고 더 내려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우리 이웃이 필요로 하는 것인지와 그것을 나누는 방식 또한 제공자인 교회 중심이 아니라 수혜자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아픔에 공감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교회가 될 때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사회로부터는 칭찬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김종생 온양제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