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묻지마 살처분 잔혹사… 대안 고심
입력 2014-02-10 16:03
[쿠키 사회] 충남 음성·진천에서 ‘국내 1호’ 동물 복지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홍기훈(54) 대표는 10일 억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병원성 인플루엔자(AI)로 닭 6만7000마리를 살처분하라는 방역당국의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2012년 7월 이 농가는 전국 11곳의 농가와 함께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물 복지농장으로 지정됐다.
동물 복지농장은 일정 수준의 동물 복지 조건을 갖춘 곳을 국가가 공인해주는 것이다.
이들 농장은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의 좁은 공간에 닭 등을 몰아넣고 집단 사육하는 일반 농장과 달리 1㎡당 8마리 이하의 닭을 사육한다.
홍 대표는 “인근 농가에서 AI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살처분을 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며 “건강한 닭을 매장시키는 것은 지역특성을 무시한 중앙 부처의 공권력 남용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음성군과 충북도는 이들 농장이 일반 농장과 다른 조건에서 닭을 사육하는 점을 들어 농림축산식품부에 예방적 살처분을 제외해 달라고 건의했다.
가축전염예방법에 따르면 AI에 걸렸거나 의심할만한 증상이 있으면 전염병이 퍼질 우려가 있는 지역에 있는 지역에 살처분을 명령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AI 방역 관련된 지침에는 반경 3㎞ 내에서 사육되는 감수성 동물의 살처분을 실시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규정이 있다.
그러나 산·계곡, 하천 등 지형·물리적인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3㎞ 반경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괄 살처분하는 것은 탁상행정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충북 진천군이 9일부터 살처분에 들어간 이월면의 산란계 농장의 경우 발생 농가와 거의 3㎞ 끝자락에 있다. 더욱이 폭 60∼80m의 미호천 지류가 있어 사람 등을 통한 AI 전파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보고 진천군은 AI 발생 초기에 위험지역에서 제외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진천군의 한 농민은 “AI가 발생하면 책상에서 지도를 놓고 컴퍼스로 반경 3㎞를 그린 뒤 모두 살처분하는 것이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라고 지적했다.
유영훈 진천군수도 위험지역 내 닭에 대한 살처분 명령을 내리지 않아 농림축산식품부와 한동안 갈등 양상을 보였다.
전국 공무원노동조합 진천군 지부 등 진천지역 20여개 단체는 ‘AI 발생지역 특별재난 지역 선포 및 살처분 중단 촉구 범 군민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원회는 “오리와 닭이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사례가 없고, 진천에서는 1마리의 닭도 이상 징후가 없는데 닭 50만 마리를 살처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반경 3㎞의 모든 가금류를 살처분하는 것은 외국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살처분 비용도 만만치 않다. 방역당국은 이번 AI 발병에 따른 살처분 보상금이 300억∼310억원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닭과 오리의 마리당 평균 단가를 1만500∼1만1000원으로 놓고 계산한 금액이다. 더 이상 AI가 추가발생하지 않을 경우 이번 AI 발생으로 인한 피해액은 2006∼2007년 2차 발생 때와 비슷한 600억원으로 추정된다.
고병원성 AI의 확산을 막는 대처법은 사실상 ‘예방적 살처분’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무차별적 살처분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비용 부담, 작업자들의 피로감과 후유증, 해당농가의 피해 등으로 인해 반대 목소리가 여전하다.
유럽연합 등에서는 AI발생한 해당 농가나 500m 오염지역 내에서의 선택적 살처분을 하고 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이원복(49) 대표는 “우리나라는 3㎞ 지역 내의 건강하고 멀쩡한 동물들까지 싹쓸이로 죽이는 묻지마식 살처분만 있다”고 지적했다. 2003년 국내에서 AI가 처음 발생 이후 2003년, 2006년, 2008년, 2010년 10년 동안 2~3년을 주기로 AI가 반복되며 총 약 2500만 마리의 가금류가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설명이다. 고병원성 AI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닭과 오리의 숫자는 겨우 121마리에 불과해 건강한 닭과 오리 99.99%가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대량 학살됐다는 것이다. 진천=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
음성=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