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범죄 급증… 푸에르토리코 중산층 엑소더스
입력 2014-02-10 01:31
닐사 벨라즈케즈(50·여) 푸에르토리코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여름 고교에 다니는 10대 두 자녀와 남편, 76세 노모와 함께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로 이주했다. 대학에서 정년을 보장받은 유능한 교수였지만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오랫동안 살았던 고향에 미련을 둘 수 없었다.
화학공학자로 비누가게를 운영하던 알렉시스 소토마이요(47)씨 역시 두 자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했다. 볶음밥을 놓고 친구들과 떨던 수다가 그립기도 했지만 운영하던 회사가 5년 사이에 매출이 40%나 줄어들면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에 편입되지 않고 자치령으로 남아 있는 카리브해의 조그만 섬 푸에르토리코에서 최근 범죄율 증가에 세금 폭탄, 경기침체로 중산층을 중심으로 탈출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중산층의 대탈출을 1950년대 당시 푸에르토리코 농촌에서 벌어진 인력 대탈출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당시 농촌 인력이 직장을 구하기 위해 공장이 있는 뉴욕이나 플로리다, 보스턴으로 이주하던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은 의사나 교사, 엔지니어, 간호사, 교수 등 전문직 인력이 떠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푸에르토리코의 전문직 인력이 계속 빠져나가는 것은 경제가 좋지 않은 데다 세금은 느는 등 주거환경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7일 푸에르토리코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 등급인 ‘정크’로 강등했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비슷한 조치를 내렸다. 무디스는 “수년간의 재정적자와 연기금 부족, 예산 불균형, 7년간의 경기후퇴 등 많은 문제가 있다”며 조정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8년간 푸에르토리코의 경제는 만신창이가 됐다. 채무는 700억 달러에 달하고 실업률은 무려 15.4%에 이른다. 1인당 주민소득은 겨우 1만5200달러로 미시시피주의 절반에 불과하다. 367만명의 주민 중 37%가량이 식량쿠폰 지원을 받는 빈곤층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파산을 선언한 디트로이트처럼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2013년 당선된 알레한드로 가르시야 파디야 지사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고강도의 긴축정책을 펴면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알레한드로 지사는 한때 1000억 달러에 달하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교사연금을 비롯한 주요 3개의 연금 지급률을 낮췄다. 전기료와 수도료 등 공공요금도 대폭 인상했다. 공무원 감원 대신 세금 인상을 택해 재정적자의 70%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이런 긴축정책이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소토마이요씨의 경우 한 달에 전기료만 600달러를 지불하는데 이는 본토보다 배가량 비싼 것이다. 수도요금도 60%나 인상됐다.
공교육체계 역시 무너져 대부분의 중산층은 한 달 등록금만도 2000달러에 달하는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다. 닐사 교수는 “월세를 살더라도 아이를 사립학교에 맡기고 있다”고 개탄했다.
생활환경이 좋지 않다 보니 인구는 2011부터 해마다 1%씩 감소했다. 대부분 플로리다와 뉴욕, 텍사스, 버지니아 등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미국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어 이주는 자유롭다. 자연스럽게 범죄율도 높아졌다. 2011년에만 1136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본토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고급 리조트가 세제혜택 축소에 불만을 품고 투자를 꺼리고 있다.
올란도 소토마이요 푸에르토리코대 교수는 “번듯한 전문직 직장인인 40∼50대가 본토로 이주하는 것은 푸에르토리코에 희망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이런 현상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