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영 기자의 소치 다이어리] 4년 뒤 평창에선 ‘한국만의 멋’ 담아낼 수 있을까

입력 2014-02-10 01:36


소치올림픽 개막식을 둘러싼 최고의 화제는 ‘사륜기’가 된 오륜기다. 다섯 개의 눈꽃 모양 구조물이 각각 원형으로 펼쳐져 오륜기가 돼야 하는데 오른쪽 다섯 번째 구조물이 펴지지 않은 것이다.

러시아의 올림픽 방송 주관사인 국영 채널 ‘로시야 1’은 전 세계에 송출하는 방송에 사전 녹화된 리허설 장면을 내보냈으나 이미 실수를 감추기엔 역부족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밀어붙인 소치올림픽에 비판적인 서방 언론은 앞다퉈 개막식 사고를 보도했고, 미국 온라인 쇼핑몰에는 사륜기를 패러디한 디자인의 티셔츠가 판매되기도 했다.

하필이면 오륜기의 다섯 번째 원이 아메리카 대륙을 상징하기 때문에 요즘 러시아와 사이가 좋지 않은 미국을 겨냥해 일부러 그랬다는 웃지 못할 음모론까지 등장했다. 게다가 개막식 최종 성화 주자가 오바마 대통령 부부를 상대로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킨 이리나 로드니나여서 그런 의혹을 더욱 부채질했다.

러시아 하원의원인 로드니나는 1972년 삿포로올림픽부터 80년 레이크플래시드올림픽까지 피겨스케이팅 페어 3연패를 달성한 ‘피겨의 전설’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오바마 대통령 부부에게 바나나를 들이미는 합성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려 비난을 샀었다.

해프닝은 있었지만 개막식 공연 그 자체는 매우 뛰어났다.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은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 됐고, 러시아의 모든 것이 녹아든 한 편의 대서사시가 무대에 펼쳐졌다. 무대 위는 물론 바닥과 공중까지 입체적으로 활용한 게 인상적이었다.

대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와 보로딘의 ‘이고르공’,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화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미술 등 러시아가 자랑하는 예술이 개막식 구석구석에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디아나 비쉬노바, 지휘자 유리 바슈메트 등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자리를 빛냈다. 일각에서는 소치올림픽이 너무 고급예술로 가득차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쉽고 대중적이었던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비해 재미없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알리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소치올림픽 개막식을 보는 내내 4년 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대한 걱정이 자꾸 들었다. 평창올림픽조직위는 우리 문화유산을 소재로 저만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소치올림픽조직위는 3년 전부터 개막식 공연 아이디어 공모를 하는 등 준비에 들어갔다. 평창올림픽조직위는 언제부터 준비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런 것을 담당할 인적 자원은 있는지 의구심을 감출 수가 없다.

소치=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