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아웃] 태극전사들, 부담감 떨치고 경기를 즐겨라

입력 2014-02-10 02:32

소치동계올림픽 첫 메달을 이승훈에게 기대한 건 4년 전 밴쿠버올림픽에서의 ‘깜짝 선전’ 때문이었다. 당시 이승훈은 스피드스케이팅 5000븖에서 누구도 예상 못한 은메달을 거머쥐더니 1만븖에선 기적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쇼트트랙에서 전향한지 1년도 안된 ‘무명의 스케이터’가 거둔 쾌거였다.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이승훈은 한국 메달의 물꼬를 틀 선수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밴쿠버 때 그랬던 것처럼 당연히 메달을 딸 것이라는 기대가 이승훈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부담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지난 8일(현지시간) 5000븖 경기에서 12위를 기록한 이승훈은 “죄송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디펜딩 챔피언’들에게는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떨쳐내는 정신훈련이 체력단련 못지않게 버겁다고 한다. 이승훈의 부진은 컨디션 난조, ‘네덜란드 3인방’의 선전 등으로 인한 심리적 위축이 거론되지만 압박감도 크게 작용했다.

이승훈은 올림픽을 앞두고 촬영한 한 미니 다큐에서 “(밴쿠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했다. 메달을 따본 적도 없었고, 딸 수 있을까 꿈만 꿨다. 그런데 메달 획득 후 뭔가 알게 됐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실제 그는 2011년 이후 2년 동안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하는 등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이승훈은 9일 훈련을 마친 뒤 가진 인터뷰에서 “경기 전까지는 자신이 있었는데 막상 경기가 시작된 후 왠지 모르게 긴장되고 압박이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소치 입성 후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그는 “초반부터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스퍼트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제일 형인데 흔들리는 모습을 모이면 안 될 것 같다”며 “남은 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승훈이 더 이상 자책하지 않고 전의를 다시 불태우겠다고 하니 다행이다.

올림픽을 바라보며 4년을 준비해온 선수들에게 애당초 불가능한 주문일 수도 있지만 태극전사들이 좀 더 즐기는 자세로 경기에 임했으면 좋겠다. 메달을 따고 눈물을 쏟기보다는 춤을 추며 수상의 기쁨을 한껏 드러내는 당당한 ‘88올림픽 세대’가 아닌가. 부담 주거나 못했다고 욕할 사람은 없다. 경기를 즐겨라.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