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진 목사의 시편] 오름과 내림
입력 2014-02-10 02:31
산이라는 공간에는 사회적 안전시스템이 없다. 등산 사고는 2010년 기준 국가관리 23개 재난 중 인적재난 2위(사망 및 부상 2521건), 사고 건수 3위(3088건)에 올라 있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이런 위험을 동반하는 것이다. 등산 중 일어나는 가장 빈번한 사고는 추락과 실족이다. 이밖에 여러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산복 판매 산업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산 사랑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입춘이 지나고 봄소식이 들려온다. 아직은 날씨가 쌀쌀하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날씨가 풀리고 많은 이들이 다시 산을 찾게 될 것이다. 신앙인은 등산 중에도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다. 신앙은 등산, 곧 오름의 길을 걷는 것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성자 프란체스코’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프란체스코의 동료 수사 레오가 질문했다. “프란체스코 형제, 당신은 다른 형제들에겐 쉽고 평탄한 길을 선택해도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정작 당신은 왜 고통스러운 오르막길을 택했습니까. 왜 하필이면 추위와 비와 눈 속으로 갑니까.”
프란체스코는 대답했다. “레오 형제, 하나님은 항상 추위와 비와 눈 속에서 나타나십니다. 그러니 속 태우지 마세요. 평지에서는 부유한 영주들과 아름답고 매력적인 귀부인들을 만날 수 있고, 그 세계의 주인인 죽음과 당신의 육신인 가엾은 늙은 당나귀를 만날 수 있어요. 레오 형제, 그렇지만 진정한 레오 형제(하나님을 경험한 자)는 산을 올라갑니다.”
신앙은 하산, 곧 내림의 길과도 닮아 있다. 아니, 오히려 하산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인의 잣대를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물론 산을 내려오는 것은 오르는 것 못지않게 매우 위험하다.
성경에서 ‘하산의 미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모세다. 그가 느보산에서 죽은 뒤 여호수아에게 온전히 리더십이 이양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살아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세와 여호수아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지도 모르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분열됐을지도 모른다. 중국 명나라 때 진계유라는 관리는 “일은 통쾌할 때 그만두어야 한다(事當快意處能轉)”고 말했다.
호사가들은 한국교회가 썩었다고 한다. 목회자의 비리와 악행을 말하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들려오는 봄바람 같은 선한 소식들이 있다. 특별히 여러 목사님들이 은퇴 후 후임목회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아예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신다거나 선교를 떠나시는 ‘하산’의 신앙을 실천하고 있다.
봄이 오면 복잡한 마음을 접어두고 산에 올라가보는 게 어떨까. 산을 오르며 연약한 나와 광대하신 하나님을 만나보자. 산을 내려오면서 생각해보자. 사람은 다 떠날 때가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렇게 되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한 바른 신앙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거룩한빛광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