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손병호] 삼성家의 ‘묻어둔 이야기들’
입력 2014-02-10 02:31
최근 삼성가(家) 장남인 이맹희씨가 동생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의 유산을 나눠 달라고 제기한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왔다. 맹희씨는 현재 상고를 고민 중이다.
당대 최고 재벌가 형제가 다투는 게 언뜻 이해가 안 돼 보이지만, 맹희씨가 1993년에 쓴 책 ‘묻어둔 이야기’를 읽어보면 저간의 사정을 일부 이해할 수 있기는 하다.
책은 우선 이 회장이 2012년 2월에 맹희씨와 누나 숙희씨(LG가 구자학 아워홈 회장 부인, 1심 때 원고)를 맹비난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당시 이 회장은 “그 양반(맹희씨)은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청와대에 고발해 집에서 퇴출당했고, 금성(현 LG)으로 시집간 숙희는 같은 전자업을 한다고 시집에서 구박받자 우리집에 와서 떼를 썼다”고 발언했다.
맹희씨는 ‘청와대 고발’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했다. 이 고발은 고인이 된 둘째 아들 창희씨가 1969년에 아버지의 해외 달러 밀반출 등 6가지 비리를 청와대에 밀고한 일을 말한다. 당시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물러나 있던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삼성 복귀를 막으려고 장남이 배후조종한 일이라고 믿었다. 맹희씨는 하지만 “전혀 몰랐던 일”이라고 몇 차례나 결백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 일은 그룹의 대권을 셋째 아들로 이양하는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됐다. 이병철 회장은 평생 ‘배신’을 가장 싫어했는데 자식에게 그런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배신에 얼마나 치를 떠는지는 맹희씨도 책에 언급했었다. 그는 “아버지가 사카린 사건 때 뒤를 봐주기로 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배신당하자 박 대통령을 거론하며 내가 평생 듣지 못할 심한 욕설을 했다. 나로선 당황할 정도로 심한 욕이었다”고 소개했다.
숙희씨 관련 내막은 이렇다. 둘째 딸과 삼남을 결혼시켜 돈독했던 이병철 회장과 금성사 구인회 회장은 1968년 봄에 돌연 앙숙이 됐다. 당시 이병철 회장은 구 회장과 안양골프장에서 만나 “구 회장, 우리도 전자사업을 하려고 하네”라고 말했다. 이에 구 회장이 버럭 화를 내며 “남으니까 하려고 하지”라고 ‘느닷없이 쏘아붙였다’는 것이다. 둘은 곧장 헤어졌고. 구 회장은 삼성가 일을 하던 아들(구자학)을 금성사로 복귀시켰다. 그러니 숙희씨가 친정에 찾아가 ‘하소연’을 했을 것이다.
맹희씨는 경영권 이양 및 상속과 관련해 “아버지는 임종 전 인희 명희 건희 그리고 내 아들 재현(현 CJ그룹 회장)이에게 구두유언을 하고 건희에게 경영권을 물려줬다”고 밝혔다. 또 “아버지가 생전에 ‘유언장을 바꾼다’는 말(경고)을 했었는데 ‘맹희 너한테는 한 푼도 물려줄 수 없다’는 뜻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는 대목도 있다.
이에 비춰보면 경영권은 확실히 이 회장에게 넘어갔다. 유산 부분은 불명확하나 전체 맥락에선 맹희씨에게는 주지 말라는 게 이병철 회장 뜻으로 해석된다. 차명주식의 경우 ‘경영권’에 해당된다면 이 회장 것이 되지만, 맹희씨는 경영권이나 재산분배와 무관한 숨겨진 재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전자 쪽에 더 무게를 뒀다.
맹희씨는 이병철 회장이 밀수사건으로 물러난 뒤 1967~73년 삼성의 총수로서 삼성코닝을 세우는 등 오늘날 삼성전자의 기틀을 닦았다고 주장했다. 그게 맞다면 경영권과 재산분배에서 철저히 배제된 그가 많이 섭섭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이 부분에 대해 ‘호암자전’(1986년)에서 “맹희에게 그룹 일부를 맡겼는데 6개월도 채 못돼 그룹이 혼란에 빠졌다”고 밝힌 바 있다.
요즘 재벌 형제 간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그런 뉴스에 많이 불쾌해하고 있다. 돈을 둘러싼 가족 간 다툼이라서 더욱 그렇다. 맹희씨가 깨끗이 포기하든, 이 회장이 형을 감싸안든 서둘러 매듭지었으면 좋겠다.
손병호 산업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