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회를 위하여-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 (6) 21세기 학생과 20세기 교사의 충돌
입력 2014-02-10 01:34
권위 잃은 교단, 세상 탓만…
복학생인 부산 H고교 2학년 성훈이(이하 가명·19)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부터 주먹다짐깨나 했고 복장 단속하는 학생주임에게 대들다 혼난 적도 많았다. 그래도 학교 못 다닐 문제아는 아니었다. 고교 1학년 점심시간에 벌어진 사건 역시 대단한 건 아니었다.
꾸물대다 급식시간에 늦은 성훈이는 뒷문으로 급식실 안을 들여다보며 반 친구들을 찾고 있었다. 지나가던 옆 반 교사가 “새치기 하지 말라”며 뒤통수를 후려쳤다. “누구야? 에이, ××” 뒤돌아보던 성훈이 입에서 평소에 달고 살던 욕설이 튀어나왔다. 교사는 성훈이를 복도에 세워놓은 채 닥치는 대로 때리기 시작했다.
“욕한 거 잘못인 거 알아요. 그래도 그렇게 개 패듯 팰 일이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어요. 그 뒤로 학교고 뭐고 다 싫어졌어요. 매일 학교 빠지고 그러니까 아빠가 자퇴하래요. 그만뒀죠.”
부산 P고교 1학년 때인 2010년 자퇴한 강민이(20)는 중3 때 학교에만 가면 배가 아픈 과민성대장증상이 생겼다. 아픈 친구를 데리고 보건실에 가다 복도에서 가정교사와 마주쳤다. 가사실습실 싱크대에 버려진 쓰레기 때문에 교사는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
“니가 범인이냐?”
“아니요.”
“(옆 친구를 가리키며) 그럼 너냐?”
“얘 지금 아픈데. 보건실 다녀와서 말하면 안돼요?” 대답하던 강민이 뺨 위로 ‘짝, 짝, 짝’ 교사의 손바닥이 내리 꽂혔다. 말대꾸한다는 이유였다.
“아, 그때 진짜 억울했는데. 그래도 맞은 거 아무한테도 얘기 안했어요. 엄마한테도 말 안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학교만 가면 배가 아픈 거예요. 조퇴하고 결석하고 그 뒤로는 엉망이었죠.”
만약 성훈이가 욕을 하고 강민이가 말대꾸하던 그 순간, 교사들이 체벌 대신 말과 훈계를 택했다면. 그랬다면 두 아이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성훈이와 강민이는 ‘억울하게 체벌당한 기억’을 자퇴 결정의 주요 이유로 꼽은 대표적 사례였다. 국민일보가 만난 학교이탈 청소년 40명 중 ‘체벌·학칙’이 자퇴에 영향을 끼쳤다고 답한 경우는 3분의 1에 가까운 14명이었다. 대부분은 이혼·빈곤 같은 가정적 요인, 학습부진, 진로고민 등과 원인이 중첩돼 있었다.
“억울하게 두들겨 맞았다”는 아이들 얘기가 100%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학교이탈 청소년들이 스스로 재구성한 이야기를 통해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은 ‘교사가 곧 규칙’이라고 믿던 과거 10대와는 전혀 다른 세대였다. 체벌에 민감하고 규율을 답답해하며 자기 욕구에 솔직한 21세기의 아이들은 20세기 교사들의 억압적인 훈육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 차례 자퇴했다가 복학한 대전의 고교 1학년생 수연이(18·여). 아이는 인터뷰 도중 갑자기 ‘미니스커트에 최신 헤어스타일로 단장한 여교사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는 “옷, 머리 신경 끄고 공부만 하라”면서 교사들이 최신 유행 패션과 ‘파마’를 하는 건 불공평하단다.
“일단 학교가 우리한테 무슨 옷을 입어라, 말라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돼요. 사람마다 어울리는 헤어스타일과 옷이 있는데 그걸 학교가 어떻게 일률적으로 규제하나요?”
대전의 M중학교 3학년 다솜이(16·여)는 선생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우리한테는 청소 좀 하라고 잔소리하더니 자기 교무실 책상은 엉망이더라. 항상 지시만 하고 정작 본인들은 잘 안 한다”며 교사들을 성토했다.
여고생 2학년 민경이(19)도 비슷한 불평을 했다. 민경이 학교는 급식 장소가 좁아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배식판을 들고 30분씩 줄 서 기다린다. 그때마다 교사들이 나타나 “미안, 먼저 먹을 게” 하며 새치기를 한단다. “학생들에게 규칙 지키라 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규칙 절대 안 지켜요. 완전 짜증나요.”
교사들에 대한 ‘뒷담화’ 속에는 교사와 학교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달라진 시선이 반영돼 있다. 아이들은 교사의 절대적 권위나 체벌할 권리, 학생에게만 적용되는 규율과 규제를 ‘그냥’ 납득하지 않았다. 학교 밖 세상의 논리를 일찍 터득한 요즘 10대들은 학칙을 각자의 방식과 수준에서 수용하거나 배척했다. 23년 경력의 조현분 유성생명과학고 상담교사는 “옛날 학생들이 무조건 선생님 말, 학교 방침을 믿었다면 요즘 아이들은 학교가 내 문제를 다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걸 너무 잘 안다”며 “각자 자기 방식대로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달라졌으니 교사 역시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20세기 교사들은 21세기 아이들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속도의 격차가 만든 이런 틈바구니 사이로 매년 수많은 아이들이 빠져 허우적댄다. 대전 남학생가정형위센터 유낙준 센터장은 “학생들은 변했고 외부 환경도 달라졌는데 학교는 20∼30년 전 그대로다. 학교가 학생들을 대하는 방식, 교사들의 마인드도 전혀 변한 게 없다”며 “학교가 바뀌지 않으면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이영미 정승훈 차장, 이도경 김수현 정부경 황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