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쌍용차 153명 정리해고는 무효”… 항소심서 해고자들 승소, 4년8개월 만에 복직 길 열려

입력 2014-02-08 02:32

쌍용자동차 정리 해고로 직장을 잃고 법정 투쟁을 벌여온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09년 6월 해고된 이후 4년8개월 만이다.

서울고법 민사2부(부장판사 조해현)는 7일 쌍용차 해고자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노동자들은 회사로 복귀할 수 있다. 재판부는 “정리해고 당시 쌍용차에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던 점은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구조적이고 계속적인 위기가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의 쟁점이었던 안진회계법인의 2008년 회계감사 보고서에 대해서는 ‘논리적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안진회계법인은 2008년 ‘쌍용차의 미래 가치가 현저히 낮아질 수 있다’며 쌍용차 손익계산서에서 5167억원을 손실 처리했다. 1861억원이었던 당기순손실은 7110억원으로 늘었다. 쌍용차는 재무상태 악화를 이유로 2009년 4월 전체 인력의 37%에 달하는 2646명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최종 해고된 165명 중 153명은 “회사 측이 정리해고를 위해 손실을 부풀렸다”며 해고무효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노동자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보고서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자 서울대에 보고서 특별감정까지 의뢰했다. 그러나 특별감정에서도 ‘당시 쌍용차의 손실 처리가 합리적이었다’는 감정 결과가 나오면서 노동자 측 패소 가능성이 짙어 보였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신차종 판매 계획을 포함하지 않은 채 작성된 회계보고서는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노동자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2008년 회계보고서는 쌍용차가 6개 차종 중 4개를 단종한 후 2013년까지 신차를 전혀 개발·판매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작성됐다. 재판부는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에서 신차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쌍용차의 회계조작 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재개될지 주목된다. 검찰은 지난해 1월 해고무효 소송의 항소심 재판부가 회계자료 조작 여부에 대해 감정에 착수하자 재판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수사를 중단한다는 의미의 시한부 기소중지 결정을 내렸었다.

재판부는 정리해고의 다른 근거들도 조목조목 배척했다. 사측은 자동차 1대 제조에 들어가는 노동시간이 타사에 비해 높아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노동시간은 차종에 따라 달라지므로 이 같은 사실만으로 생산성이 낮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사측이 해고를 피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재판부는 대기업인 쌍용차는 중소기업보다 해고 회피를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밝혔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은 선고 직후 눈물을 흘리며 서로 얼싸안았다. 김득중 쌍용차 지부장은 “판결을 들으며 눈물만 나왔고 귀를 의심했다”며 “대한문 분향소에 있는 24명의 동료를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쌍용차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쌍용차 관계자는 “정리해고 당시는 법정관리를 받고 있어서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며 “고의로 적자를 부풀린 게 아니라고 금융감독원이 결론 내렸는데 이 같은 판결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밝혔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