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오인숙] 부부 이야기

입력 2014-02-08 01:34

가까이 지내는 지인 중에 젊어서 아내 속을 꽤나 썩였던 남편이 있었다. 남편이 일자리를 잃게 되자 아내가 가계를 이끌어 나갔다. 직장에서 늦게야 지친 몸으로 돌아온 아내는 남편이 혼자서 상심할까봐 남편을 부추겨 산책을 하며 남편에게 ‘잘될거야’라며 격려하곤 했다. 그런 아내가 50대에 들어서자 갱년기 장애로 힘들어했다.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고 홧증이 난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인생의 험난한 고비를 겪은 남편은 그런 아내가 불쌍해졌다. 남편은 아내에게 “여보, 그동안 참았던 거 다 풀어 놓으시오. 오늘부터 당신이 어떤 욕을 해도 내가 다 들어줄 테니. 하고 싶은 대로 내게 욕을 하시오”라고 했다. 그날부터 아내는 남편에게 욕을 퍼부어댔다. 몇 달 동안 아내는 욕을 했다. 남편은 욕을 먹으면서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이제 날 보고 욕하라는 말 하지 마세요. 이제는 정말 욕하기 싫어요”라고 했다. 아내의 홧병이 가라앉았다.

남편과 아내는 저녁마다 마을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 문제로 속을 썩이며 서로가 ‘상대를 잘못 만나서 자신들도 불행하고 아이들도 부모 못 만나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상대방의 문제와 자신의 문제를 별개로 생각했던 부부가 자녀의 문제나 자신들의 문제는 부부 공동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자녀를 믿어주기로 부부가 합의를 보았다. 실컷 놀기만 하던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공부를 해야겠다’며 놀던 때의 열정에 곱절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만난 그 집 아이들이 “끝까지 믿어준 부모가 감사하다”고 했다. 요즘 그 부부는 ‘장난치기’ 놀이를 한다고 했다. 즐거운 장난을 만들어 장난을 즐기며 사는 것이 살맛 난다고 했다.

서로 살아온 만큼의 앙금이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 관계 속에 살아야 하는 인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앙금을 질질 끌고 살 것이 아니라 털어버릴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은 현명한 일일 것이다. 갱년기의 위기가 삶의 전환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계속 함께 살아가야 할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잡기 위한 노력이 인생을 아름답게 한다.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