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하 칼럼]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여

입력 2014-02-08 01:34


새해 덕담을 나눈 지 엊그제인데 벌써 2월이다. 깊은 겨울 한가운데에서 그새 입춘을 맞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시골집 대문에 붙인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글씨가 크게 눈에 띄었다. 노년의 시간이 성큼성큼 달려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입춘은 이른 봄의 예고편일 뿐이다. 기승을 부리는 추위를 보면서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우리 속담을 떠올린다. 이제 곧 대보름이 지나면 부지런한 농부들은 농사 준비를 할 것이다. 어느새 봄이 오고 있구나! 지혜로운 농부는 ‘겨울에도 마른 김을 맨다’더니, 나처럼 얼뜨기 농부도 곧 기지개를 켤 때가 오는구나 싶다.

어떤 사람이 다섯 가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먼저 축령산 편백나무숲을 산책하는 일을 손꼽았다. 숲을 두세 시간 걸으면 마음에 평화가 온다고 하였다. 또 장작을 땐 뜨끈뜨끈한 온돌방에 등짝을 지지는 일과 한가로이 차를 마시는 일도 순위에 올렸다. 그리고 지인들과 맛집을 찾는 일이며, 고전을 읽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고전에 파묻혀 삶을 달관하던 선인들의 보석 같은 지혜를 만나면 근심과 걱정도 달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읽자 하니 분명히 은퇴한 노인일 것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취미에 공감하면서도 남다른 고상함이 느껴졌다. 이러한 행복 리스트는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누구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한가한 노인일망정 언제나 일용할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면 누구도 예외 없이 걱정과 근심이 떠나지 않는 게 ‘한평생’ 아니던가?

올해의 말머리로 ‘불안’을 손꼽는 사람이 많이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불안은 언제나 문턱에 앉아, 혹은 베개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는 듯하다. 새해부터 시끄러운 조류인플루엔자(AI)가 그렇고, 20년 만에 반복되었다는 여수 앞바다의 기름유출 사고가 그렇다. 초기 대응 미숙과 안일한 대처를 타박하지만 당사자들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3년 가까이 해법을 찾지 못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말할 나위조차 없다.

불안의 원인은 천재든, 인재든, 재난 탓도 있겠지만 정작 자신의 존재기반이 불안정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앞날이 창창해야 할 청년들의 미래는 불투명함을 넘어 암담하다. 우리 세대는 어려서부터 전쟁과 가난을 겪으면서도 잘 살아왔다고 감사했지만, 우리 자손들은 대부분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업, 결혼, 출산 그리고 긴 노년 등 더 많은 전쟁을 치르며 살아갈 모양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목사는 지금이 칠년 대풍년의 마지막 해라고도 하고, 어떤 목사는 이미 칠년 대기근이 벌써 시작되었다고도 진단한다. 얼마 전까지 자신감 넘쳤던 한국교회는 이제 무거운 멍에를 후배들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유례없는 성장이 우리 시대의 자부심이라면 물량주의니 세습이니 부끄러운 신앙적 유산 역시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

사실 불안은 우리 시대, 우리나라만의 언어는 아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위기와 염려는 사실 세계적인 것이다. 안셀름 그륀이 “우울증은 온 세계 각 나라의 국민병”이라고 했듯 시대적 우울은 인류가 겪는 생태적 질병이라고 이름 붙여도 그럴싸하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던 그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굳이 고전 읽기가 아니더라도 농촌에 살면 농부들에게 귀담아 듣는 지혜가 퍽 많다. 어릴 적 지붕 위에 대보름만한 둥근 박이 열리면 쓸모가 참 많았다. 그러나 무른 바가지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농부는 단단한 박을 얻기 위해 한겨울 내내 씨앗이 든 박속을 처마 밑에 매달아 꽁꽁 얼렸다. 추위와 비바람을 견뎌낸 씨앗만이 아주 오지게 단단한 바가지로 쓸 만한 ‘돌박’을 만들기 때문이다.

한겨울, 시린 손이 온기를 찾듯 우리 마음이 봄의 평화를 기다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지금 많은 사람이 겪는 불안과 염려가 튼튼한 쓸모를 만들려는 담금질의 과정이면 좋겠다. 희망은 새봄에만 피는 꽃이 아니라 꽁꽁 언 얼음장 밑으로 흐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 성경’에서 팔복의 첫머리 말씀을 실감나게 옮겼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마 5:3)

(사단법인 겨레사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