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공짜 없는 대기오염
입력 2014-02-08 01:31
짙은 안개로 햇빛이 차단되어 낮에도 앞을 분간할 수 없었고, 연기 속의 아황산가스는 황산안개로 변해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1952년 12월 4일 영국 런던에서는 이처럼 갑자기 들이닥친 스모그로 인해 3주 동안 호흡장애 및 질식 등으로 4000여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이후 만성폐질환 등으로 8000명이 더 사망해 총 1만2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강의 기적이 진행되던 1970∼80년대의 서울도 지독한 대기오염에 시달렸다. 두꺼운 스모그에 가려 남산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인근의 남한산성에서는 이끼가 사라져 그 흔적만이 성벽에 남아 있을 정도였다.
올 겨울 우리나라 국민들은 여전히 대기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수시로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일기예보보다 미세먼지예보에 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왜 하필 이런 국가가 이웃에 있어서 멀쩡한 우리마저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원망이 절로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 미세먼지가 과연 중국만의 탓일까.
최근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진은 중국 대기오염의 상당 부분은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지로 수출되는 제품의 제조로부터 유발된다는 내용의 논문을 미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중국에서 배출된 인위적인 이산화황의 36%, 질소산화물의 27%, 일산화탄소의 22%, 블랙카본의 17%가 수출을 위한 제품 제조와 관련이 있다는 것. 또한 미국 서부 해안에 나타나는 황산염 오염의 4분의 1은 중국 수출과 연관이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중국 발 미세먼지는 강한 편서풍을 탈 경우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을 포함해 태평양, 하와이 섬, 미국까지 날아간다. 최근 연구보고에 의하면 유럽에서도 중국의 미세한 대기오염 입자가 검출되고 있다고 한다.
선진국들은 환경을 위해 자국에서 사용하는 공산품 제조를 중국에 위탁하고 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대기오염 중 일부는 편서풍을 타고 다시 그들에게로 돌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대기오염에서도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부터 노력해도 중국의 대기가 맑아지려면 최소 20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그동안 세계의 굴뚝은 중국에서 인도나 다른 개도국으로 옮겨갈 수도 있지만, 장소만 바뀔 뿐 지구촌의 대기오염 문제는 똑같이 반복될 것이다. 과학기술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새로운 에너지 생산 메커니즘을 개발할 때까지….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