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감정노동에 비용만 따질 텐가

입력 2014-02-08 01:35


서울에 ‘120다산콜센터’가 있다. 서울시와 25개 자치구와 관련된 민원사항은 물론 각종 생활정보를 안내하는 서울시 종합민원전화다.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국번 없이 ‘120’을 누르면 언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란 캐치프레이즈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전화 한 통화면 손쉽게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편리한 서비스다.

하지만 상담사들의 처지에서는 다르다. 이들은 근무시간 동안 하루 평균 105건, 4.9분당 1건의 민원전화를 처리한다. 대기전화가 많아 잠시 쉴 틈도 없이 계속 전화를 받아야 해 업무강도가 세다. 민원인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인격을 무시해도 밝고 상냥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폭언·욕설, 성희롱적인 발언을 해도 매뉴얼에 따라 3단계로 경고한 후에야 전화를 끊을 수 있다. 불쾌한 언행에 마음은 상처가 날 대로 난 뒤지만 감정을 추스를 여유가 없다. 눈물을 훔치고 울화를 삭이며 또 전화를 받아야 한다. 친절을 강요당하는 감정노동의 극단에 서 있는 게 바로 이들이다.

근무환경도 열악하다. 근무 공간도 비좁고, 키보드나 마우스 등 기본 작업도구도 교대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정도로 작업환경도 좋지 않다. 통화·대기·휴식 여부, 누적 통화 수 및 통화시간 등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된다. 통화내용이 모두 녹음되고 관리자에게 실시간으로 감청되는 전자감시와 노동통제 속에서 일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상담사들이 자신을 가리켜 “소모품인 것 같다. 계속 싼 값에 갈아 끼우는 건전지 같다”고 자조하는 이유다. 서울시 인권위원회가 지난 5일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의 노동인권을 개선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서울시에 권고했다. 이번 권고는 지난해 10월부터 다산콜센터 근무현장을 방문해 상담사들을 심층면접하고, 기존 조사 자료를 분석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문경란 시 인권위원장은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의 상황을 “데드라인(deadline·극한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시 인권위는 개선책으로 상담사의 방어권 보장과 업무의 합리적 조정, 근무환경 개선, 휴식시간 보장, 과도한 통제시스템 개선, 직접고용 등 고용구조 개선방안 마련 등을 제시했다. 직접고용은 민감한 이슈지만 위원회는 인권침해의 근본적인 원인이 민간위탁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다산콜센터는 민간위탁이란 간접고용 방식을 취했지만 과거 서울시나 자치구 공무원들이 담당하던 상담·안내 업무를 한데 통합한 것으로 서울시가 실질적인 사용자라고 봤다. 다산콜센터에는 현재 서울시로부터 업무위탁을 받은 3개 민간업체 소속 460여명의 상담사가 근무하고 있다.

이번 권고와 관련, 서울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 같다. 상담사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공무원 총정원·총액인건비제도란 한계, 장기적으로 예산 부담 증가, 다른 민간위탁 사업장 종사자와의 형평성 등 복잡한 문제들이 내포돼 있어서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건 서울시의 의지에 달려 있다. 서울시는 수익 창출이 아니라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상담사들의 근무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게 급선무다. 공사나 공단 설립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고용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비용이 늘어날 수 있겠지만 4대강 사업, 뉴타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등 정책 실패로 인해 낭비되는 천문학적인 예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박원순 시장 취임 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앞장서 온 서울시가 ‘시민의 삶을 바꾸는’ 또 한번의 발걸음을 내딛길 기대한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