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먹구구식 대출관행이 거액 사기대출 불렀다
입력 2014-02-08 01:41
KT 자회사인 KT ENS와 협력업체 직원들이 7년째 13개 금융사로부터 2800억원을 대출받아 가로챈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감독원은 6일 KT ENS 직원 김모씨와 N사 등 6개 납품업체 직원들이 2008년부터 지난달까지 위조한 외상매출채권 확인서를 금융사에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금 2800억원을 빼돌렸다고 밝혔다. 대출 사기 금액은 하나·농협·국민은행 등 3개 시중은행 2000억원, 10개 저축은행 800억원으로 추산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는 검사 초기에 나온 금액으로 조사가 진행되면 3000억원을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전체 금융권을 대상으로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실태조사에 나설 계획이어서 다른 금융사에서도 유사 사례가 밝혀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상매출채권 확인서는 구매기업이 판매기업에 물품대금 지급을 약속하는 증서를 말한다. 판매기업이 이 증서를 금융사에 담보로 제공하고 돈을 빌리는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은 중소기업이 물품대금을 효율적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어음대체 결제제도다. 하지만 범인들이 가짜 외상매출채권 확인서를 만들어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이다.
이번 사기 대출은 금융사의 대출 심사와 사후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서민과 중소기업에는 대출 문턱을 한없이 높이는 금융사가 대기업과 계열사에게는 사전·사후 점검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이다. 금융사는 이참에 대기업을 맹신하는 관행을 뜯어고치고, 기존 대출금에 대한 관리 체계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수년 동안 100차례 이상 거액의 대출이 이뤄졌는데도 허위 외상매출채권 확인서를 적발하지 못한 것은 금융사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졌음을 의미한다. 고객 정보 유출에 이어 사기 대출까지 당했으니 신용을 먹고사는 금융사 체면이 말이 아니다. 금융사 직원들이 사기 대출에 개입했을 개연성이 있는 만큼 금감원과 경찰은 전모를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금감원은 전체 금융권으로 실태조사를 확대할 방침이지만 뒷북 조사란 지적을 면키 어렵다. 평상시 금융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