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희망지기-김동운] 쓰러뜨린 것도, 일으키신 것도 모두가 하나님… 노인·어린이 행복이 내 소명

입력 2014-02-08 01:32 수정 2014-02-08 00:09


서울 길꽃어린이도서관 김동운 관장

어린이를 꿈꾸게 하고 노인들을 춤추게 하는 도서관이 있다. 그곳엔 아이들이 자라는 이야기가 넘쳐나고 풋풋한 사람냄새가 난다. 서울 강서구 금낭화로(방화3동) 길꽃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전용 도서관이지만 가족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화합과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됐다.

지난 6일 오전 10시 길꽃어린이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둥근 탁자에 모여 앉은 직원들이 큐티 중이었다. 김동운(66·영신교회 장로) 도서관장, 행정팀장, 사서들이 성경을 읽고 있었다. “매일 아침 직원들과 큐티를 하는데 오늘은 좀 늦었다”며 김 관장이 반갑게 인사했다.

도서관 서고와 열람실을 둘러봤다. 특별할 것 없는 도서관인데, 마을공동체 회복의 지역거점 역할을 하면서 꽤 유명해졌다.

도서관은 지역주민을 위해 동화축제를 개최하는 한편 실버순찰대 조직, 이야기보따리, 전통놀이 짚공예 등 특별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국숫집 ‘동화마을 잔칫날’도 운영 중이다. 이 모든 사업은 김 관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예전부터 아이들과 부모, 노인들이 결합된 3세대 문화를 형성해 노인이 함께 어울리는 문화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소망이 도서관에서 정점을 이룬 것이다.



노인, 소외된 존재 아닌 지역사회 주체로

김 관장은 20여년 전부터 독거노인들에게 ‘사랑의 건강식’을 제공하는 등 노인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았다. 누구보다 그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제가 29세 때 어머니가 풍을 맞으셨고 우울증까지 앓으셨습니다. 3년간 100명이 넘는 한의사를 불러 어머니를 낫게 했더니 아버지마저 풍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아버지 완쾌를 위해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거치면서 누구보다 노인들의 문제, 사정을 알게 됐습니다. 노인들은 병이 나면 꿈과 희망을 잃어요. 그렇게 되면 바로 상실감과 좌절감에 결국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노인들에게 보람찬 일을 만들어 주자는 것. 노인정에서 할 일 없이 방황하는 것보다 적당한 일자리와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노인들에게 자신감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15개 노인정, 2000명의 노인이 참여하는 노인연합회를 만들었다. 노인봉사대인 ‘은행나무 봉사단’도 조직해 12년째 활동 중이다.

“봉사단을 하다보니 노인들에게는 소일거리 외에도 용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출석하는 영신교회(금낭화로 소재)에 2006년 노인대학을 세웠습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문교육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교육받은 노인 60명이 이야기보따리, 북치는 실버순찰대, 전통놀이 짚공예 강사로 일한다. 이야기보따리 강사는 어린이도서관, 장애인시설, 독거노인, 실버요양소, 문화행사 등에서 동화를 들려준다. 실버순찰대는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브라스밴드 복장을 하고 지역을 순찰하며 보안관 역할을 한다. 전통놀이 짚공예 강사는 매주 토요일 방화근린공원에서 노인·부모·자녀 3대가 어울릴 수 있는 전통놀이를 하고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전통놀이를 가르친다.

“이것은 단지 노인이 소외된 존재가 아닌, 지역사회의 주체로 참여하고 등장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이로 인해 노인들은 더욱 자신감을 가졌고 노인 중심으로 지역 주민이 결합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새로운 비전을 품다

이런 일을 하기까지 김 관장에게 시련도 있었다. 그는 방화동 토박이다. 4남4녀의 다섯째로 자라며 일본강점기에 면서기를 지낸 아버지 덕분에 궁색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많은 형제 때문에 먹을 것으로 다투며 자라 어른이 되면 큰 사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리고 일찍이 사업에 성공했다.

20대 젊은 시절 이미 30∼40명의 직원을 거느린 유망한 청년사업가로 성장했다. 사업은 날로 번창해 씀씀이도 남달라 사람들에게 퍼주기를 좋아했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던 그에게 제동이 걸린 건 38세 때. 당시 운수업을 하던 그의 사업장에서 직원이 목숨을 잃는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고 연타로 대형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그간 들끓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가 더욱 충격에 빠진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 사업이 망하자 땅에 대한 소유욕이 강했던 아버지는 혹여 땅을 팔아 달라고 할까봐 미리부터 외면했다. 고통의 시간이었다. 날마다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 앞에 선 제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깊은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더라고요. 어떻게든 빠져나가자, 하나님을 붙들고서라도 여기서 나가자라는 생각에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의 나이 40세. 교회로 향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나갔다. 4시간 자고 하루 종일 성경 말씀을 썼다. 그렇게 마음의 중심을 잡아갔다.

기도원에도 올랐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중에 몸속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의 비염이 깨끗하게 나았다. 치유의 기적도 경험했다. 그때부터 육신의 아버지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더 사모하게 됐다. 그러자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삶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았다. 인생이 재미있었다.

“돈에 대한 생각이 변했어요. 그저 돈을 버는 데만 열심이었는데 이 돈을 어디다 쓸까, 누굴 위해 쓸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 서원했지요. 앞으로 돈을 벌면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쓰겠습니다.”

어린이가 꿈꾸는 책 속 세상 만들기

2007년 국숫집 ‘동화마을 잔칫날’을 설립하고 수익금은 모두 노인복지를 위해 내놓았다. 운영은 아예 지역주민 자치에 맡겼다. 서울 강서구 양천로(마곡동)에는 음식점 ‘호가네’를 열었다. “주변 상권을 보호하고 사슴농장도 살릴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셔서 오리·사슴고기집을 오픈하게 됐습니다. 특히 호가네에선 할머니들이 만든 만두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식당에 주차장이 부족할 때는 제 뜻을 안 주변 식당에서 감사하게도 주차장을 개방해주고 있습니다.”

강서구립도서관인 길꽃어린이도서관 관장에 2007년 임명됐다. ‘노인이 춤추고 장애인이 신나고 어린이가 꿈꾸는 행복한 마을’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공모를 통해 위탁사업자로 선정된 그가 관장이 되면서 도서관은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과 부모들 그리고 이와 연계된 지역주민들이 함께하는 도서관, 즉 동네사랑방이자 지역커뮤니티공간으로 변모했다. 삶의 지혜를 얻고 정보를 나누는 만남과 쉼터의 복합 문화공간이었다.

“도서관 운영은 그 기본 틀부터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서관은 지역사회와 함께해야 하며 지역사회의 공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개관 넉 달 만에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책 속의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강서어린이동화축제’를 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3세대가 함께하고 가족이 어울릴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동화축제를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는 필요한 장비를, 부모들은 소품을 만들고 경찰은 교통정리, 군대는 군악대를 지원하는 등 강서구의 모든 주민과 기관이 참여했다.

동화축제는 매회 새로운 주제로 체험마당, 공연마당, 먹거리 마당으로 구성돼 진행된다. 1, 2회 축제를 열고 2009년 신종플루, 2010년 태풍으로 취소돼 2011년 3회 축제가 열렸다. 지난해에는 5회째를 맞아 1만5000명이 참여해 명실공히 지역 축제로 자리 잡았다.

1회 축제를 마치고 아쉬움이 남아 인재 육성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해 김 관장은 ㈔영우장학회를 설립, 매년 2차례 고등학생과 대학생에게 70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장학금 지원을 위해 동화마을 잔칫날 발산점을 열었다. 발산점은 아들 요한(35)씨가 운영한다. 요한씨는 6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돕고 있다. 이곳 수익금으로 영우장학회를 지원한다. 김 관장은 장학금을 받고 대학 졸업 후 한전에 들어간 학생이 지금은 회원으로 가입, 활동 중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운영하는 모든 사업장에는 원칙이 있다. 매일 아침 큐티로 하루를 시작하고 성경통독으로 하루 일과를 마감하는 것이다. “사업장이 잘되는 비결요? 믿음이지요. 큐티를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읽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저는 더욱 매진할 뿐입니다.”



노인협동조합 설립을 꿈꾸며

김 관장은 요즘 노인복지와 관련한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다. “한창 독거노인을 돕던 중 저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던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 일을 진짜 좋아서 하는 건지,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해보고 싶었지요. 당시 한 시각장애인 노인을 집으로 모셔왔습니다. 지린내가 진동해 목욕을 시켜드렸는데, 그분을 모시는 동안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확신했지요. 역시 나는 노인을 섬기는 데 은사가 있구나. 더욱 자신감 있고 떳떳하게 일하자고 말입니다.”

1990년대 방화동이 개발돼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모두 잘사는 줄 알았는데 방화동에서 독거노인의 시신이 보름 만에 발견됐다는 뉴스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서울시에서 독거노인 400가구를 이주시켰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중 도움이 필요한 273명을 돕자고 교인들과 지역사회 사람들에게 일일이 손편지를 썼다. 1인 1노인을 결연해 돕자고 제안했다. 결연돕기는 지금도 교인들과 계속하고 있다.

지역사회와 노인 복지를 위해 항상 새로운 발상을 하는 김 관장은 “우리 사회가 복지를 겉으로만 하지 사랑의 마음이 없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노인재단을 만들어 자식들로부터 분리된 노인들이 협동해서 즐겁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인협동조합을 만들 계획이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만두공장 반찬공장에서 만든 것을 구입해 부모에게 수익금이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건강관리, 일상생활, 장례 등 부모 봉양은 조합에서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믿음 하나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실천하고 있는 김 관장은 현재 조합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