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마귀와의 싸움
입력 2014-02-08 01:32
우리가 주의를 깊게 기울이지 않는 성경 말씀 가운데 하나를 든다면 다음 구절일 것이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 이 말씀에 신경을 안 쓰고 산다면 마귀를 편안하게 해주는 신자가 될 가능성이 많다. 교회 역사상 이 구절을 가장 염두에 두고 살았던 사람은 4세기 수도사들이다. 그들의 기록들을 읽을 때마다 놀라운 것은 마귀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만일 이를 빼고 사막의 영성을 이야기한다면 핵심을 놓치고 주변만 맴돌게 된다. 이른바 ‘사막 마귀론’의 주춧돌을 놓은 것은 수도사들의 조상, 안토니였다. ‘안토니의 생애’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분량들이 마귀들과의 싸움에 관한 내용이다.
친구·친척 모습을 한 마귀
왜 안토니는 영적 삶에서 마귀와의 전투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두었던가. 그것은 자신의 영적 진보가 마귀의 공격에 대항하며 단계적으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이론이 아닌 실제 경험이 그 확신을 만들었다. 은둔생활 초기에 안토니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내면의 생각들이었다.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었다. 마귀는 때로는 친구나 친척, 요염한 미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음란한 생각, 달콤한 쾌락, 돈과 명예, 음식이나 휴식에 대한 집착들, 힘겨운 앞날의 훈련, 사막 생활의 위험과 불편, 위협과 공포, 환영과 망상 등이 안토니를 괴롭혔다.
또 과거의 부귀영화로 그를 유혹하거나 수녀원에 맡기고 온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게도 했다. 선한 것들로도 유혹했는데 영적 지도자의 지위나 극단적인 금욕 제안 등이었다. 마귀들은 번번이 실패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대장 마귀가 직접 출현해 안토니를 초죽음에 이르도록 구타까지 했다. 마귀는 그의 나이와 환경, 성숙 정도에 따라 차별된 방법으로 끊임없이 유혹했다. 안토니가 그리스도를 닮아갈수록 마귀는 그를 미워하는 정도와 공격을 한층 높였다. 낙원의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마귀를 대적한 투쟁의 삶으로 성취되었다.
마귀들의 공격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안토니는 그들이 사용하는 전략과 대항하는 방법들을 익혀갔는데, 제자들에게 소개한 핵심 병기는 다음과 같다. “그들을 무찌를 강력한 무기는 올바른 삶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수도사들을 두려워한다. 금식과 철야, 기도, 온화와 친절함, 돈에 대한 경멸, 허영심 부재, 겸손, 가난한 자들에 대한 사랑, 자선, 성내지 않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헌신에 겁을 낸다. 이러한 수도사들에게 짓밟히지 않기 위해 그들은 안간힘을 쓴다. 마귀들은 그들을 대적하는 성도들을 위해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알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권세들을 무력하게 하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기에(골 2:15) 그들은 십자가 표시를 보면 혼비백산하여 도망간다고 말했다. 안토니는 마귀들과 직접 대결할 때는 용맹스럽게 ‘너는 누구냐’고 물으며 그 정체부터 파악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마귀의 출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안토니는 거듭 강조했다. 그는 “마귀들을 완패시키고 꼼짝 못하게 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마귀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깊이 받아들이자”고 권면했다. 안토니의 가르침을 정리하자면 항상 마귀들의 공격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살라는 것, 또 동시에 하나님의 보호를 믿으라는 것이다. 안토니는 이 둘에 대한 균형감각을 제자들이 가지기를 원했다. 안토니 다음 세대 수도사들이 어떻게 이 가르침을 계속 전승했는지는 다음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흑인 수도사 모세는 악한 생각으로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바로 일어나 원로 이시도레에게 가서 고백했다. 그러나 쉽게 물리칠 수가 없었다. 열네 번이나 계속 스승을 찾아가 마음속의 악한 생각을 자백했다. 그러자 이시도레는 모세를 수실 지붕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서쪽을 봐라. 무엇이 보이느냐?” “마귀들이 수도사들을 향해 불타는 화살들을 쏘아대고 있습니다.” “이제는 동쪽을 봐라. 무엇이 보이는가?” “마귀들을 대항하여 수도사들을 막아주는 천사들을 봅니다.” “어느 편이 더 많으냐? 마귀들이냐, 천사들이냐?” 모세가 대답했다. “우리를 방어해주는 천사들이 많습니다.” 그 즉시 그를 공격하던 생각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극악무도한 적, 마귀
안토니는 제자들에게 마귀들에 대한 체험을 말하기 전에 자신이 바보스럽게 보일지라도 사실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 시대 사막 수도사들조차 믿기 힘든 이야기이니 우리에게는 더 황당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는 사자같이 무시무시하고 극악무도한 적이 있는데 바로 마귀라고 말씀한다. 그 힘은 대단하고 우리로부터 멀리 있지 않다. 마귀는 천국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여정을 방해하려고 온갖 공작을 일삼고 있다. 그러므로 마귀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주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키워가자. 이 둘은 잊지 말아야 할 핵심 영성이다.
김진하 교수<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