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120주년 맞다

입력 2014-02-07 15:09

[쿠키 사회] 갑오년(甲午年), 1894년과 2014년. 올해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20주년 되는 해다.

반봉건과 반외세를 외쳤던 동학농민혁명은 이 땅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민중항쟁이었다. 전라도만이 아닌 조선 땅 대부분에 걸친 거대한 변혁 움직임이었다. 또 당시 조선과 청나라, 일본을 둘러싼 동북아시아 정세를 뒤흔든 대역사였다. 그러나 혁명은 미완으로 끝났다. 이후 오랫동안 ‘동학란’으로 불리어 지는 등 철저히 폄하돼 왔다.

다행히 뒤늦게나마 새로운 세상을 향한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인식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제폭구민(除暴救民)’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은 오늘날 정치인들도 잊지 말아야할 덕목으로 남아 있다. 혁명 이후 두 번째 회갑인 2주갑을 맞아 올해 전국 곳곳에서 혁명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자주와 평등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역사적 의의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재정립하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대한민국과 중국·일본 등이 여전히 맞서 있는 현 정세에도 큰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매서웠던 날씨가 다소 풀린 지난 6일, 전북 정읍시 덕천면에 있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학생들이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들은 전봉준 장군 등 주요 인물들의 자료들을 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오른쪽 방에는 ‘1894년으로 가는 타임머신’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기념관 측은 120주년을 맞아 지난해 가을부터 학생과 일반인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사업은 전국 20여개 기념사업회와 지자체 등에서 펼쳐지고 있다. 중심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다. 기념재단은 공모를 통해 “사람, 다시 하늘이 되다”라는 슬로건도 정했다.

기념재단은 이달 중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지도’를 발간한다. 이 지도엔 전국 60여 곳의 유적지 현황과 정보가 담겨진다. 기념재단은 또 10월중 서울서 전국대회를 연다. 이 기간 국제학술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기념재단은 이들 행사에 중국·일본은 물론 북한 관계자들도 초청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올해 예산이 2억원만 배정된 것은 안타깝다.

또 기념재단은 동학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을 추진하는 한편,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작업을 전북도와 함께 시작했다.

여기에 기념사업회와 지자체들도 기념행사와 특별공연을 준비 중이다.

㈔갑오농민동학혁명유족보존회는 15일 정읍에서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 고부봉기 재현행사’를 열 계획이다. ㈔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는 4월 ‘전봉준장군 추모제’를 연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5월 ‘동학농민군 전주입성 기념대회’와 창극 ‘꽃불(가제)’을 무대에 올린다. 충북 보은에서는 창작탈극 ‘눈자라기2’가 연중 공연된다.

정부에서는 정읍 황토현전적지에 480억원을 들여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을 조성한다. 공원은 33만여㎡ 부지에 2017년 지어진다. 이곳에는 추모시설과 연구·교육시설 등이 들어선다.

기념재단은 그동안 역사바로세우기에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위상 정립과 현대적 계승에 집중할 계획이다. 동학농민혁명을 ‘세계 4대 근대시민혁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윤석모(59) 사무처장은 7일 “동학혁명은 프랑스시민혁명과 독일농민혁명, 중국태평천국운동에 버금갈 정도로 민본주의를 앞세운 의의가 높다”며 “올해는 그 위상을 새롭게 정착시키기 위한 발판을 다지는 해”라고 말했다.

특히 기념재단과 기념사업회들은 “동학혁명이 전북만이 아닌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역사”라며 이를 확고히 인식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문병학(51) 사무처장은 “동학혁명은 전주의 모악산이나 정읍의 내장산, 대전의 계룡산이 아니다. 한반도를 휘감은 ‘민족민주운동의 백두대간’이다”며 “당시 민족적인 항거를 잊지 않고 그 시대정신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과 영화에서도 동학혁명이 주인공이 되고 있다.

언론인 전진우씨는 최근 장편소설 ‘동백’을 펴냈다. 전씨는 ‘승자의 기록인 역사를 뒤집어 패자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노력’으로 혁명을 복원했다. 소설가 이성수씨도 혁명 지도자중의 하나인 손화중에 대한 소설을 최근 탈고했다.

원광대 박맹수(59) 교수도 현재 여성운동가 15명과 협업을 통해 15권짜리 대하소설을 집필 중이다. 박 교수는 “요즘같이 ‘철학이 없는 시대’에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잘 살리면 21세기 우리 사회도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일본 감독에 의해 촬영 중이다. 마에다 겐지(81)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동학농민혁명’을 제작하기 위해 지난달 경남 창원에 와서 검무(劍舞)를 카메라에 담았다. 마에다 감독은 한 지방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확히 120년 전의 일이다.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일본은 한반도에 진출했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승리하면서 한반도를 식민지화했다. 일본인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동학혁명정신’을 내세우고 있다.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안철수 의원은 지난 5일 전주에 있는 동학혁명기념관을 찾았다.

정읍=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