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년간 45.5%가 부부폭력 경험
입력 2014-02-07 02:34
지난해 5월 자영업자 김모(52)씨는 서울 면목동 자택에서 만취 상태로 아내를 때렸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한 김씨는 아내가 택시비를 대신 내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뒤에서 폭행했다. 겁에 질린 아내는 맨발로 도망쳐 경비실에 숨었다가 결국 남편을 경찰에 신고했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는 건 옛말이 됐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8∼10월 성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최근 1년간 부부폭력을 겪은 비율이 45.5%로 집계됐다고 6일 밝혔다. 2010년 조사 때의 53.8%보다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 부부폭력이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 결혼한 지 5년 미만(62.1%)일 때 부부폭력이 시작됐고 이들 중 6.2%는 신체적 상해를, 17%는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은 폭력 재발 위험에 노출된 채 가정폭력을 감추려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폭력 피해자 중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1.8%에 불과했다. 김씨 아내처럼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고작 1.3%였다. 피해자 대부분(68%)은 ‘그냥 있었다’고 했고, ‘가족이니까’(57.4%) ‘대화로 해결하기 원해서’(23.7%) 신고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지방에 사는 A씨는 결혼한 지 한 달 뒤부터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엉덩이뼈가 내려앉아 세 차례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신고는 생각도 못했다. 주변에서 물어보면 넘어졌다고만 했다. 의사에게도 거짓말을 했다.
설문에 참여한 55%가 가정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신고하겠다고 답했으나 정작 피해자의 98.2%는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인식과 현실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존재했다. 부모·자식, 형제·자매간에 일어나는 ‘가족원 폭력’도 부부폭력 실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폭력 피해를 경험한 경우는 7.0%였으나 이들 역시 60.3%가 피해를 당한 뒤 ‘그냥 있었다’고 답했다.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8%에 불과했다.
황정임 여성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가정폭력을 쉬쉬하는 상황에서 TV 등 공익광고를 통해 피해자 지원 서비스를 홍보하고 관련법에 대한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며 “가정폭력 예방교육과 치료 회복 프로그램도 확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달 시행된 가정폭력방지법에 따라 이제는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조사를 방해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