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초에는 “사상 최대”, 연말엔 목표액 미달… 대기업 투자계획은 ‘아니면 말고’式
입력 2014-02-07 01:35
지난달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30대그룹 사장단은 간담회를 갖고 투자 활성화를 다짐했다. 그러나 간담회에 맞춰 발표하려 했던 30대그룹의 지난해 투자실적과 올해 투자계획은 발표하지 못했다. 산업부의 자료 제출 요구에 30대그룹 중 절반인 15개 그룹만 응했기 때문이다. 특히 30대그룹 투자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4대그룹 중 정부에 자료를 제출한 그룹은 단 1곳뿐이었다. 결국 정부는 올해 30대그룹 투자계획 발표를 3월 이후로 미뤘다. 정부 관계자는 6일 “지난해 투자계획 대비 실적 자료 요구에 기업들이 ‘정부에 성적검사를 받아야 하느냐’며 반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만큼 투자계획에 미달한 기업들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30대그룹은 지난해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윤 장관과 간담회를 갖고 148조8000억원을 투자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상반기 집행률은 41.5%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같은 해 8월 30대그룹은 투자계획을 당초보다 6조원 많은 154조7000억원으로 높여 잡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투자하는 분은 업고 다녀야 한다”는 발언과 함께 정부가 투자 활성화에 한창 드라이브를 걸 때였다. 호기롭게 국민 앞에 투자 확대를 약속했던 30대그룹의 지난해 투자실적은 기업의 자료 제출 거부로 집계되지 않았지만 목표액에 미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의 ‘아니면 말고’식 투자계획은 지난해뿐만이 아니다. 연초에는 사상 최대 투자계획이라고 선전했지만 실적은 소리 소문 없이 미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11년 1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 주재 아래 30대그룹 간담회를 개최하고 30대그룹이 사상 최대 규모인 113조2000억원의 투자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이건희 삼성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SK 최태원 회장, LG 구본무 회장 등 4대그룹 총수가 모두 참석했다. 그러나 그해 실제 30대그룹 투자액은 109조9000억원에 그쳤다.
전경련으로부터 바통을 받아 정부가 직접 30대그룹 투자계획을 챙기기 시작한 2012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해 1월 산업부(당시 지식경제부)는 해외투자를 포함한 30대그룹의 전체 투자계획액이 151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이듬해 30대그룹의 실제 투자액은 그보다 10조원 미달한 138조2000억원이었다.
기업들은 투자계획과 실적의 차이를 연초와 달라진 투자환경과 규제를 이유로 내걸고 있다. 그러나 30대그룹의 사내 유보금은 2007년 228조3000억원에서 2012년 390조1000억원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는 점에서 기업이 투자 의욕 없이 말로만 투자 확대를 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내내 정부가 투자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풀면서 기업에 퍼주기를 했지만 대기업은 규제 완화에 따른 잇속만 챙길 뿐 투자에 여전히 인색하다”고 비판했다.
세종=이성규 백상진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