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통신비로 허리 휘는데… 국내 통화요금이 싸다고?
입력 2014-02-07 02:33
우리나라의 음성통화 요금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저렴하다. 그러나 단말기가 워낙 비싸고 데이터 사용료 비중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여서 소비자들이 실제 부담하는 통신비가 상당히 높다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제조업체와 이동통신업계는 각종 보고서 등을 통해 ‘값싼 음성통화 요금’을 강조하고 있지만, 일종의 착시현상일 뿐 소비자 부담이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이다.
미국 금융투자회사 메릴린치는 최근 발행한 지난해 3분기 보고서에서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4번째로 음성통화 요금이 저렴하다고 발표했다. 메릴린치 발표는 1분당 평균 음성통화요금(RPM)인데 RPM은 이용자의 지불비용(ARPU)을 통화량(MOU)으로 나눈 것으로 음성통화 요금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우리나라의 RPM은 해마다 낮아져 2010년 0.09달러에서 이듬해 0.07달러로, 지난해에는 0.04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는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통신비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결과다. 단말기 가격이 비싼 탓에 통신비 부담이 만만치 않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단말기 비용을 반영한 월평균 가계 통신비 지출액에서 34개 회원국 가운데 3위(148.39달러·약 16만원)를 차지했다.
이통업계는 요금이 너무 비싸다는 비판에 대해 “통신요금은 싼데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제조사의 가격이 비싼 탓”이라며 가격구조를 공개하는 내용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통사들도 비싼 통신비 부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메릴린치 조사에서 음성통화 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게 나온 것은 최근 데이터 제공량을 기준으로 한 음성무제한 요금제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음성통화 요금의 평균요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통신비 중 음성통화 요금보다 데이터 사용료의 비중이 점증하는 요즘 상황에서 음성통화료가 저렴하다는 점을 내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가 지난해 실시한 통신비 부담 원인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통신비 부담 원인 1위로 단말기 할부금이 꼽혔고 2위는 데이터 요금이었다.
이통업계도 이런 현실은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이통업체 관계자는 6일 “통신요금이 외국에 비해 저렴하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데이터 사용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아 실제 지불금액은 많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제조사가 높은 단말기 가격을 유지하고 업계가 ‘저렴한 음성통화료’를 자랑하는 동안 소비자들은 여전히 단말기값과 데이터요금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회사원 이정원(33)씨는 “통신비 부담이 큰 것은 단말기 할부금과 데이터 사용료 때문”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있는데 이를 개선하지 않고 정책 당국과 제조사, 이통사들이 소비자들만 우롱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