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주도 평화협상 줄줄이 난항… 외교력 시험대
입력 2014-02-07 02:33
핵 개발 중단, 화학무기 폐기, 중동 분쟁 등 미국이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평화협상들이 이행 과정에서 줄줄이 난항을 겪고 있다. 힘이 아닌 대화로 협상을 타결시켰던 ‘오바마 독트린’이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란 “핵 협상, 미국 뜻대로 안될 것”=무함마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5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요 핵 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미국은 우리가 핵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길 바라지만 그런 요구가 실현되진 않을 것”이라며 “이란의 핵 기술은 협상 대상이 아니며 논의할 가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날 웬디 셔먼 미 국무차관이 상원 청문회에서 이란에는 핵시설이 필요 없다고 언급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란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국 및 독일(P5+1)은 지난해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 생산 등 핵 개발 프로그램 가동을 일부 중단하는 대신 금융제재를 완화하는 내용의 잠정 합의안을 확정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최대의 외교 성과”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이란에 시간만 벌어줘 실패한 협상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었다. 자리프 장관은 지난달에도 이란이 핵시설 폐기에 합의한 적이 없는데 미국이 이를 오도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등 합의 내용 해석을 둘러싸고 양측 간 이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은 오는 18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열린다.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도 ‘삐걱’=내전 중인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폐기하는 작업도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 화학무기금지기구(OPCW)가 설정한 일정표에 따르면 시리아는 5일까지 보유한 화학무기의 거의 전량을 제거하기로 돼 있었다. 지난해 말까지 7000t, 이달 5일까지 500t 등 총 7500t 규모다. 그러나 화학무기를 싣고 공해상으로 이동한 화물선은 겨우 2척에 불과하고, 여기엔 화학무기 700t 정도만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 미국 외교관은 “시리아가 지금까지 가장 치명적인 화학무기의 4% 정도만 반출했다”고 전했다.
다만 시리아 측은 당초 계획대로 6월 30일까지는 모든 화학무기에 대한 완전 폐기를 완수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파이잘 알무크다드 외무차관은 “내전 등 정부가 겪고 있는 어려움 때문에 일부 약속을 이행하는 데 차질을 빚고 있다”며 “시리아 정부는 지속적으로 OPCW에 협조하고 있고 모든 화학무기를 완전 폐기하기로 한 시한은 약속대로 이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폐기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리아가 최종 시한을 맞추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시리아는 현재 새로운 화학무기 폐기 시간표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마이클 루한 OPCW 대변인은 “시리아 정부 측의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팔 평화협상도 난항=지난해 7월 미국의 주선으로 이뤄졌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회담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동예루살렘 3개 정착촌에 주택 558가구를 추가로 건설하는 계획을 강행하면서 평화협상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5일 동예루살렘 하르 호마에 주택 386가구, 네베 야코브에 136가구, 피스카드제브에 36가구를 건설하도록 민간 건설업체에 허가를 내줬다.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점령한 뒤 이스라엘인을 이주시키기 위해 정착촌에 주택을 건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해 유엔 등으로부터 반발을 사왔다. 이스라엘 시민단체 피스나우 관계자는 AFP에 “부끄러운 때에 내려진 부끄러운 결정”이라며 “평화 해결을 바라는 정부라면 이처럼 많은 허가를 내진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팔레스타인 고위 관리 하난 아슈라위는 “이스라엘이 일부러 도발해 우리를 협상장에서 떠나도록 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