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한국형 검찰독본이 나오려면
입력 2014-02-07 01:37
며칠 전 식사 자리에서 ‘검찰독본’이라는 책이 화제에 올랐다. 함께 자리한 중견 검사는 “우리나라 검사들이 아직도 일본 검찰독본을 읽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 우리나라 검찰도 한국형 검찰독본을 가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검찰독본의 저자는 도쿄지검 특수부장을 지냈고 일본에서 ‘특수수사의 신’으로까지 불렸던 가와이 신타로(河井信太郞) 검사다. 가와이 검사는 1979년 자신과 선배 검사들의 수사 노하우와 수사철학, 수사사례 등을 종합해 검사 교육용 지침서인 검찰독본을 펴냈다. 우리나라 검사들은 20여년간 검찰독본을 번역해 복사물이나 파일 형태로 돌려 읽었다. 2004년 강금실 법무부 장관 시절 정식으로 번역 발간됐다. 검찰독본은 아직도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 검사의 자세와 마음가짐 등을 새겨볼 수 있는 지침서로 통한다고 한다.
검찰독본은 총론과 각론으로 나뉘는데 총론에서는 검찰정신, 수사의 단서와 준비, 실행 등을 다루고, 각론에서는 주식회사 범죄 특별배임죄 등 주로 경제사범 수사 기법을 구체적인 수사 사례를 들어 다룬다.
책의 제1절 1장 제목은 ‘검찰권 행사에 있어서의 불편부당·엄정공평’이다. 가와이 검사는 “검찰에 있어서의 불편부당이란 검찰권 행사가 항상 일당 일파에 기울지 않고,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하며, 조금이라도 그에 대한 의심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썼다. 평이하고 단순한 문장이다. ‘굳이 이 말을 일본 검사에게 들을 이유가 있는가’라는 의문마저 생긴다. 불편부당은 우리나라 역대 검찰총장 취임사와 신년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와이 검사는 불편부당·엄정공평을 강조한 다음 문장에 이렇게 써놓았다. “이 말은 극히 평이하고 당연한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기 쉬우나, 그것을 엄밀하게 실행함에 있어서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와이 검사의 말에 울림이 있는 것은 그의 수사 경력 때문이다. 일본 메이지 시대 이후 검찰독본이 출간될 시점까지 일본 검찰 수사로 내각이 붕괴된 사례는 모두 네 번 있었다고 한다. 그중 가와이 검사는 1948년 세 번째 내각 붕괴 사건인 쇼화덴코(昭和電工) 사건 수사에서 핵심 역할을 했고, 1954년 네 번째 내각 붕괴 사건인 조선의옥(造船疑獄) 사건 주임검사였다. 살아 있는 권력과 맞서 수사의 불편부당을 직접 증명해 보인 셈이다.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니 단순 비교는 어렵다. 일본 검찰이 한국 검찰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근거는 더더욱 없다. 다만 검찰독본만 보자면 불편부당을 향한 가와이 검사의 신념이 부럽다. 조금이라도 의심받지 않겠다는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가와이 검사는 “범죄 수사에 의하여 내각이 붕괴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을 추궁하고 증거를 수집하여 수사를 진행한 결과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 또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검찰의 역사도 60년이 넘었다. 후배 검사들의 존경을 받는 현직 검사도 많고, 검사복을 벗었지만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레전드급 검사도 없지 않다. 이들이 나서서 한국형 검찰독본 집필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다만 그 첫 장에는 한국형 불편부당함에 대한 깊은 고뇌가 담겼으면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섰던 무용담보다 권력 앞에 당당하지 못했던 실패담이 담겼으면 더욱 좋겠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비슷비슷한 검찰개혁 방안보다 검사의 고뇌가 담긴 책의 울림이 필요한 때다.
사회부 남도영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