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생파’에 관하여

입력 2014-02-07 01:36


‘섹스앤더시티’ 흉내를 내려고 한 건 아닌데, 그 비슷한 친구들과 나까지 넷이서 잘 어울려 지낸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서로의 생일을 반드시 챙기는 우린, 넷의 생일이 계절마다 있어 연중 고루 보게 된다. 한때 다른 친구들은 생일파티가 목적인 우정이라며 냉소를 날렸지만 살다보니 1년에 네 번 만나기도 쉽지 않다. 2월, 이제 곧 한 친구의 생일이다.

초대장을 돌리고 친구들도 여럿 불러다 맛난 간식거리를 앞에 두고 노는 ‘모던하고 도시적’인 생일파티가 낯설던 시절, 아홉 살쯤 일이다. 처음으로 엄마는 나의 짝꿍을 한 명 불러 추운 저녁 생일상을 차려주셨다. 작은 상에 내 머리통만한 굴비 한 마리를 구워내고 뜨거운 미역국에 간단한 반찬이 있었다. 아이들 밥상이라기보단 소박한 시골 어르신 밥상이었지만, 생선을 맘껏 뜯어먹으며 친구에게 연필까지 선물로 받자 꼭 주인공이 된 거 같았다.

얼마 뒤 아래층에 사는 친구의 생일이 돌아왔다. 엄마는 선물을 손에 들려 내려가 보라고 했다. 친구들도 여럿 온다고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붙어 다니던 아이였는데, 이상하게 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 엄마 손에 질질 끌려가 보니 여자애들 대여섯 명이 와서 큰 생일상에 차려진 과자며 주스며,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집에 가겠다고 울며불며 난동을 부렸다. 갑작스러운 ‘동네망신’에 화가 나 쥐어박는 엄마에게 생일은 낳아주신 부모님을 위한 날이라며 서럽게 훌쩍거렸다.

무슨 효도에 몸이 달았을까. 단지 그 처음 보는 생일파티가 너무 낯설고 부러웠던 거다. 그 뒤로도 늘 초대장을 돌리고 하는 생일파티는 이상한 소외감을 안겨주었다. 그래서인지 축하는 뒷전이 되다시피 한 생일파티조차 늘 이렇게 챙겨주는 게 참 좋다. 우리가 생일파티에서 확인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로부터의 사랑, 오늘만큼은 네가 주인공이라는 증명. 갓 태어난 순간, 온 존재로 쏟아지던 축복의 말과 눈길. 그래서 부부나 연인들은 생일을 잊어버린 상대에게 끝없는 서운함을 토로하고, 생일 초대의 유무로 관계의 깊이를 재기도 한다.

살아 숨쉬는 한 매일이 생일이겠지만, 그럼에도 그 1년의 ‘의식’이 그리운 건 많은 순간 사랑을 못 느끼고 살기에 그런지 모르겠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아홉 살 생일상에 올려주신 엄마의 굴비처럼, 입천장을 데일 듯 뜨겁고 뱃속 가득 채워지던 조건 없는 사랑 말이다. 호호 불며 오래오래 삼키고 싶은 그런 애정 말이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