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5만원권 사라지는 지하경제 양성화의 현실
입력 2014-02-07 01:36
최고액권 5만원권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만원권 환수율(시중에 공급한 화폐량 중 되돌아오는 비율)은 발행 첫해인 2009년 7.3%에서 꾸준히 늘어 2012년 61.7%에 이르렀으나 지난해 48.6%로 급감했다. 8조원가량의 5만원권이 시중을 배회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상적인 경제 체계 하에서는 발행된 화폐가 일정 시간이 지나 중앙은행으로 환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지난해 일부 지역에서는 5만원권 품귀현상으로 5만원권 공급 증가를 한은에 요청하는 금융기관도 있었다고 한다. 발행된 5만원권이 누군가의 주머니 속에 꼭꼭 숨어 있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의 고전적인 명제와 유사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칭량(稱量)화폐시대에서는 순도가 높고 낮음에 따라 구분됐던 양화·악화의 개념이 오늘날 법정 화폐시대에서는 경제 환경의 변화에 따라 고액권이 양화로서 선호돼 눈앞에서 사라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 환경은 경제활동에 대한 제약, 예측 가능성, 금리 수준에 따라 좌우된다. 박근혜정부가 세정 강화를 통한 지하경제 양성화를 강조함으로써 그에 따른 불안감이 고액권 현금 수요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저금리 탓에 현금 보유로 인한 기회비용도 줄어 당국의 간섭을 일단 피하고 보자는 뜻도 담겼다.
이뿐 아니라 경기회복이 미흡한 가운데 새 정부 출범 후 경제주체들이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경제정책을 체감하지 못한 것도 한 요인이다.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 내지 기대치가 추락하면서 향후 경제활동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고 있어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의지도 꽤 작동했을 것이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수 증대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라서 정부가 섣부르게 결과만을 앞세운다면 경제주체들에 대한 무분별한 옥죄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 지하경제 양성화 프로그램을 치밀하게 추진하는데 역점을 두면서 그 결과로서 세수 증대를 꾀하는 세정 당국의 지혜가 요청된다. 아울러 정부는 예측과 실현이 가능한 경제정책을 내세우는 등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도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