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이산가족 상봉 합의 이후 과제들
입력 2014-02-07 01:36
“상봉 인원·횟수 크게 늘려야…통일전략 대화에 남북 한쪽이라도 배제되면 안 된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자리다. 한(恨) 많은 세상에 살면서 한을 달래려고 행사장으로 달려가지만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은 혈육들을 오열하게 만든다.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의 장벽 앞에서 혈육들은 통곡한다. 이별의 장벽은 또 하나의 ‘통곡의 벽’이다.
지난해 7월 통일부 이성원 과장이 들려준 상봉 사연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재구성하면 이렇다. 2002년 초가을 금강산 온정각. 할머니와 두 딸이 반세기 전에 북으로 간 남편이자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위도 동행했다. 온정각으로 들어서는 노인들을 살피던 할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천천히 손을 들었다. 할머니는 다가온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잠깐 알은체를 했다. 그리곤 손을 뿌리쳤다.
첫째 날도, 둘째 날도 할머니는 먼 산만 바라봤다. 셋째 날, 헤어지기 직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껴안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팔을 내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북측 가족은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곳곳에서 통곡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내미는 할아버지의 손마저 외면했다.
할아버지가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드는 순간 할머니가 버스를 향해 달렸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때 버스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딸들과 사위들, 이 과장도 엉엉 울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남북 주민은 오는 20∼25일 금강산에서 통곡의 현장을 보게 될 것이다. 남북이 5일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 국방위원회가 6일 성명을 통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과 북한에 대한 비방 중지를 강도 높게 요구해 상봉 행사가 합의대로 열릴지 유동적이긴 하다.
생이별한 혈육들의 만남은 조건 없이 이뤄져야 한다. 상봉 인원과 횟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8차례만 만날 정도로 띄엄띄엄 추진되면 연로한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줄 수 없다. 모두 7차례에 그친 화상상봉도 확대해야 한다.
북한은 앞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강력히 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문제의 해법은 전적으로 북한에 달렸다. 북한은 최소한 박왕자씨 피격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 발생한 사건이고, 김 위원장이 북한에서는 그림자도 밟지 않는 ‘존엄’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아들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김정은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보여준 행보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박 대표는 200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압박’에 대해 사과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박정희가 환생해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고 회고했다.
자의든, 타의든 피해를 가한 쪽이 먼저 사과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순리다. 그래야 막혔던 것이 풀린다. 박왕자씨 피격 사건에 대해 북한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적어도 금강산 관광에 관한 한 박 대통령이 적극적인 대북 제의를 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을 지지한 남한의 보수세력을 설득시킬 명분을 김정은이 줘야 한다.
지금 한반도는 큰 격랑을 맞고 있다. 그 중심에 미국과 중국이 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일 “중국을 방문해 남북통일을 비롯한 북한 이슈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사회과학원은 최근 ‘2014년 아시아·태평양 지구 발전 보고서’에서 “향후 10년 남북관계의 핵심은 통일 문제다.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북한의) 오판을 없애야 한다”고 제안했다. 둘 다 이례적인 표현이다.
남북 당국은 제19차 이산가족 상봉 합의를 계기로 현안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 남북 어느 한쪽이라도 배제된 채 국제무대에서 통일전략이 논의되는 것은 통일로 가는 장도에 이로울 것이 없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