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노해, 오지마을 삶과 희망을 찍다… 아시아 6개국 사진에세이집 ‘다른 길’

입력 2014-02-07 02:33


박노해(57·사진) 시인이 지난 3년 동안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미얀마, 인도, 티벳, 라오스 등 아시아 6개국의 오지마을을 찾아가 사람 사는 일에 대한 희망을 담은 사진에세이집 ‘다른 길’(도서출판 느린걸음)을 냈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그것을 잠시 잊어버렸을지언정 아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지 않을 때, 지금 이 길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질 때, 바로 그때, 다른 길이 나를 찾아온다.”(‘작가의 글’)

그가 아시아 6개국을 기록한 흑백 필름 사진은 7만여 컷. 이 가운데 엄선한 140여 점의 사진과 에세이는 우리에게 깊은 물음을 던진다. “아시아 시대의 부상은, 단순히 경제 권력이 이동하는 문제를 넘어 ‘문명 전환’의 숙제를 우리에게 안겨주는 인류사적 사건이다. 세계 절반이 넘는 거대 인구 공동체가 ‘성장과 진보’라는 서구의 길을 뒤따라간 자리에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라고. 그에 따르면 아시아는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원할 ‘희망의 종자’가 남겨진 땅이다.

“하루에 가장 즐거운 시간은 짜이가 끓는 시간. 양가죽으로 만든 전통 풀무 마시키자로 불씨를 살리고 갓 짜낸 신선한 양젖에 홍차잎을 넣고 차를 끓인다. 발갛게 달아오른 화롯가로 가족들이 모여들고 짜이 향과 함께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탐욕의 그릇이 작아지면 삶의 누림은 커지고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99쪽)

그는 슬픔의 힘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소생하고 있는 아시아인의 삶을 담아냄으로써, 정직한 절망 끝에 길어 올린 ‘희망의 세계관’을 제시한다. “버마 인레 호수마을과 고산족 마을을 잇는 나무다리는 매년 우기 때마다 휩쓸려 나간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면 여러 소수민족들이 함께 모여 다시 다리를 세우고, 나무다리의 역사를 따라 서로의 믿음 또한 시간의 두께로 깊어진다. 오늘도 이 다리를 오가는 다양한 발걸음들은 마치 오선지 위에 어우러진 음표들처럼 가슴 시린 희망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244쪽)

그는 눈부시게 진보하는 세계에서 뚝 떨어진 오지마을에서 식솔들을 먹여 살릴 한 뼘의 대지를 늘려가는 전통마을 토박이들을 지켜보면 문득 “인간에게는 위대한 일 세 가지가 있다. 사는 것, 사랑하는 것, 죽는 것이 그것”이라고 깨닫는다. 또 인도네시아의 가파른 비탈 밭 ‘라당’을 일구는 여인이 들려준 지혜의 말도 전한다. “밭을 밟고 오르며 농사짓는 건 몸이 좀 힘들 뿐이지만 남을 밟고 오르는 괴로움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지요. 늘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진전은 3월 3일까지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