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특허 전쟁] “특허 방패 놓치면 창 맞는다”… 기업들 피말리는 암투

입력 2014-02-07 02:33


삼성, 시스코와도 동맹

기업에 특허는 ‘황금알’이다. 독보적 기술이나 디자인 등은 막대한 부가가치를 안겨준다. 동시에 특허는 ‘독약’이기도 하다. 한순간 삐끗하면 경쟁업체에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기술을 얻어 써야 한다. 시장을 통째로 내줄 수도 있다. 최근 특허는 기업의 생사를 결정짓는 강력한 무기로 성장했다. 특허를 놓고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각 기업은 글로벌 특허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합종연횡을 거듭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구글, 에릭슨에 이어 6일 시스코와 포괄적 특허 상호계약(크로스 라이선스)을 맺었다. 기존 특허 외에 앞으로 10년간 출원하는 특허까지 서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외부로부터 갑자기 닥쳐올 수 있는 ‘특허 공격’을 함께 막을 동맹군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 특허는 외부의 공격을 막아주는 든든한 갑옷이자 적의 허점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유효한 공격 수단이다.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삼성전자와 애플이 수년째 지루한 특허공방을 벌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늘도 산업 현장에서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특허로 인정받거나, 경쟁기업의 우월한 특허 지위를 무너뜨리기 위한 ‘총성 없는 특허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특허 선점자와 이를 막으려는 세력 간의 치열한 싸움=LG화학은 지난 1월 독자 개발한 배터리 안전성강화분리막(SRS)의 특허를 기존 한국, 미국 중국에 이어 일본과 유럽에까지 등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전기자동차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2차 전지의 핵심이 되는 기술을 관련 분야의 주요 시장에 모두 특허 등록해 경쟁사들의 무단 모방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LG화학은 당시 “특허등록을 막기 위한 경쟁기업의 치열한 방해공작이 있었다”고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경쟁사들이 유럽에서는 7회, 일본에서는 무려 15회에 걸쳐 특허 등록을 막기 위한 정보를 해당 국가 특허청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LG화학 관계자는 6일 “특허 저지를 위한 경쟁사의 정보 제공은 자료량에 제한이 없어 아무리 첨예하게 대립하는 특허도 통상 1∼2회 정도만 자료를 제공하는데 이번에는 15회나 제출했다”며 “LG화학의 특허를 막기 위한 경쟁사들의 시도가 얼마나 집요했는지 방증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경쟁기업의 방해에 막혀 특허 등록이 좌절된 사례도 있다. 삼성전자는 2000년 후반 유럽특허청에 모바일 관련 기기의 화질을 개선하는 기술과 관련된 특허를 제출했다. 그러나 2011년 유럽의 한 특허소송 관련 전문업체가 ‘동일한 내용의 선행특허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삼성전자의 특허가 인정될 경우 관련 모바일 업계에 커다란 타격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유럽특허청은 2012년 이 업체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삼성전자의 특허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삼성전자는 특허의 권리범위를 좁히고 재심을 요청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특허 등록에 실패했다.

국내 특허업계 관계자는 “유럽특허청에서 한번 특허가 인정되면 3개월 후에 그 효력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전역에 다 미치게 된다”며 “한번 등록된 특허를 취소하려면 나라별로 절차가 복잡하고 어려움도 커 사전에 불리한 특허가 등록되지 않게 하기 위한 로비전이 치열하다”고 했다.

◇국내 기업도 적극적 특허방어, 업체 간 제휴도 활발=국내 중소기업이 글로벌 외국기업과 특허 전쟁에서 승리해 특허 등록을 막은 사례도 있다. 쌍용양회 계열사인 쌍용머티리얼은 2012년 일본 TDK사와 특허 등록 소송전을 벌여 승리했다.

TDK는 1998년 유럽특허청에 고성능 페라이트 자석 제조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다. 쌍용머티리얼은 2005년 기술적 효과가 진보성에 적합하지 않고 특허의 신규성과 진보성이 결여돼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후 양측의 공방은 7년이나 계속됐으며 유럽특허청은 최종적으로 쌍용머티리얼의 손을 들어줬다. 업계 관계자는 “연 매출액 800억원대의 한국 중소기업이 글로벌 기업인 TDK의 유럽 특허등록을 막아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허 분쟁을 막기 위한 글로벌 업체 간 전략적 제휴도 활발하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구글과 양사의 특허를 공유하는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한 데 이어 이날 시스코와도 같은 계약을 체결했다. 두 회사 모두 세계적인 IT 선두 업체들이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구글·시스코 등과 전방위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잠재적인 특허 분쟁 위협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이외에도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노키아와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연장했고 2011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휴대전화 운영체제(OS) 기술 등에 대해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소니와 디지털TV 관련 특허 소송을 벌이던 LG전자도 2011년 소송을 취하하고 양사의 특허를 공유하는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에 합의했다. LG디스플레이도 2009년 유기발광다이오드(올레드·OLED) 주요 원천기술을 소유한 코닥과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협력관계를 강화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