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만의 시선… 박솔뫼 첫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입력 2014-02-07 02:32
요즘 한국문단의 기대주로 꼽히는 젊은 소설가 박솔뫼(29)의 작품은 강렬하고 낯설다. 기존의 소설적 규범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문체라든지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가는 사유가 그것인데 이러한 특징들은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낯선 소설을 만들어낸다. 2009년 장편 ‘을’로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그의 첫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자음과모음·사진)는 그 낯섦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해만에 있고 사람들은 멀리, 원래 멀었다면 더욱 멀리 있다. 그렇게 있다가 가끔 흔들리고 그 사이에는 해만이 있고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중략) 결국 나는 이곳에 있기 위해, 모두를 저편으로 보내버리기 위해 해만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해만’)
‘해만’은 육지로부터 배로 5시간 떨어진 섬으로 일종의 가상공간이다. 해만의 여행자 숙소는 현실로부터 분리된 이방인들의 자족적인 공동체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마냥 안온하거나 평화로운 공간은 아니다. 그곳은 존속살해범이 숨어들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어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데다 여행자 중 한 명인 대학생은 부모에 의해 집으로 끌려가고, 책을 읽던 남자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首都)로 떠난다. 직장을 그만두고 우연히 ‘해만’을 찾은 ‘나’ 역시 언제까지나 그곳에 머물 수는 없다. ‘해만’은 외부의 압력이 작용하지 않은 안온한 세계인 듯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그곳 역시 세상의 바깥일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안온한 세상의 바깥이라고 할 ‘해만’으로 가고 있지만 실상 ‘해만’은 없다, 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행복이라는 이름의 파랑새를 찾았다 싶은 순간, 파랑새는 이내 날아가고 만다는 텅 빈 사유가 그것이다. 이렇듯 ‘해만’은 무위의 성향을 보이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일종의 부조리극처럼 읽히는데 이런 분위기는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럼 무얼 부르지’는 5·18 광주사태를 미체험한 세대의 솔직한 역사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광주 태생인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머물 때 한 한국어공부모임에 갔다가 한국계 혼혈아인 해나로부터 우연히 ‘5월 광주’를 노래한 김남주의 시 ‘학살2’가 적힌 종이를 건네받는다. 3년 뒤 광주를 찾아온 해나로 인해 ‘나’는 다시 그 시를 떠올리지만 아무런 실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 시는 여전히 60년대 남미의 이야기처럼 보였고 아일랜드의 피의 일요일을 노래한 것처럼 보였는데 광주의 그날도 공교롭게도 일요일이었다고 하며 내가 자꾸만 남미와 아일랜드를 들먹인다고 해서 남미와 아일랜드를 잘 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그럼 무얼 부르지’)
‘나’는 마침내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의 시선은 김남주가 이야기한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에는 가닿지 않는다는 말인데 이건 좀 신기할 수도 있지만 실은 당연한 이야기다. 확실한 이야기이다. 어떤 밤들이 자꾸만 포개지는 나의 시간 속에서도 말이다. 몇 번의 5월의 밤이 포개지는 나의 시간 속에서도 말이다.”
이 같은 작중 화자의 태도는 5·18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좀더 다른 방식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발화(發話)하고 자각하는 것으로 읽힌다. 진술의 방식 역시 1980년 이후 태어난 5·18 미체험 세대의 의식을 어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 하다. 박솔뫼의 미덕은 이렇듯 의식과 무의식 사이, 규범과 비규범의 틈새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그만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실험하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