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지구촌 돈줄 쥐락펴락… 美·英·유럽 ‘빅3’ 중앙은행 총재의 힘

입력 2014-02-07 02:31


연금술사들/닐 어윈/비즈니스맵

지난 3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사상 첫 여성 수장인 재닛 옐런 의장이 취임했다. ‘세계경제대통령’의 즉위식을 전 세계는 숨죽인 채 지켜봤다. 글로벌 시장은 그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울고 웃기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대체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이기에? 책은 미국 연준 의장과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영란은행으로 불리는 영국중앙은행(BOE) 총재 자리를 현대판 ‘연금술사’에 빗대 설명한다. 달러화 유로화 파운드화를 찍어내는 3대 중앙은행의 정책이 세계 경제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줬는지, 그 은행 수장들의 결정은 또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했는지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중앙은행의 역사가 곧 인류 문명사’임을 주지시킨다. 자본주의 역사상 중앙은행의 기능을 간과할 수 없었음을 지적한다. “영란은행이 안정적인 금융 제도를 만드는데 중대 역할을 하면서 영국은 19세기 광활한 영토를 지배할 수 있었다. 연방준비제도가 창설되면서 뉴욕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인 금융수도였던 런던을 대신하게 됐고, 미국은 세계적인 초강대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그의 문제의식은 이제 중앙은행의 막대한 권력을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휘둘렀는가로 향한다.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의 조짐을 보인 2007년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세 사람, 벤 버냉키 전 미국 연준 의장과 머빈 킹 영란은행 총재,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에 주목한 이유다.

이들에게 ‘3인 위원회’란 이름을 붙이고 이들이 2007년 8월 프랑스의 대형은행 BNP파리바가 자사가 운영하던 3개 투자펀드의 환매 중단을 발표하는 순간부터 시작된 금융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추적한다. 세 사람이 유럽과 미국 대륙을 오가며 때론 저만의 스타일대로, 때론 보기 드문 ‘유대감’을 유지하며 정책을 구사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현재 뉴욕타임스의 수석 경제전문기자인 저자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워싱턴포스트’ 출입기자로 연준과 지역 연방준비은행을 담당하며 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특히 셋 중 가장 위기 대응에 잘 대처했다는 평을 받는 버냉키에 대한 묘사와 분석이 인상적이다. 2001년까지만 해도 버냉키는 ‘봉두난발을 하고 학구열에 불타는 영락없는 교수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는 ‘대공황’의 실패, 특히 중앙은행이 미리 설정한 물가상승률 목표에 맞춰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물가안정목표제’ 연구로 이름을 날렸던 최고의 경제학자였다. 그는 이처럼 걸출한 연구 업적과 논쟁을 주도하는 탁월한 소질을 기반으로 빠르게 연준 의장 자리를 장악해나갔다.

노련한 관료 출신의 트리셰는 유럽중앙은행이 유럽 통합의 산물임을 잊지 않고 유로존에 최적인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애썼다. 반면 영국의 킹은 다소 독단적인 일 처리로 반대파를 만들고, 정책 결정의 타이밍을 놓치는 과오를 저질렀다고 평가한다.

세 사람은 모두 각국 은행에 자금을 풀며 ‘화폐장벽’을 세워 경제 위기를 막는데 주력했다. 2009년 금융위기가 유로위기로 커지고 각 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면서 이들은 정부 전략에도 관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킹과 트리셰가 의회에서 정부 전략을 논평하기 시작한 것이야말로 중앙은행이 우월한 경제 권력을 행사하게 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렇다면 과연 세 사람은 성공한 것일까? 저자는 “칭찬인지 아닌지 아리송하겠지만, 파국만 피해가도 그 업적은 대단한 것”이라고 논평한다. 이들이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을 방치한 것, 영국이 초반부터 긴축 정책을 승인한 것 등은 뼈아픈 실수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이제 민주주의 사회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장들을 믿어야 하고, 그들에게 완벽을 기대할 순 없지만 점진적인 발전은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매우 골치 아픈 금융 정책과 경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다양한 일화를 통해 그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가 눈앞에서 보듯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글솜씨 덕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이 책을 2013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고 “현재까지 세계 금융위기의 진실을 다룬 책 중에서 가장 충실하고 권위 있는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선영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