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의 미디어비평] 개콘의 독주? MBC SBS의 블랙코미디는 이제 그만
입력 2014-02-09 07:11
[친절한 쿡기자] 한국 방송코미디시장엔 KBS2의 ‘개그콘서트’만 남아 있다. 개콘을 제외하면 방송코미디는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MBC나 SBS 등 타방송사 코미디프로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별로 없다. ‘방송하긴 하는데 보는 시청자가 없는 프로그램’. 방송사에겐 여간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아예 프로그램 간판을 내리던지 아니면 심기일전해서 제대로 만들던지 양단간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들이 버젓이 남아있다. 바로 MBC와 SBS 코미디프로다.
지금은 서자 취급받지만 방송코미디가 이렇게 홀대받을 장르는 결코 아니다. 코미디는 서민의 애환이 풍자와 해학으로 녹아들 수 있는 방송장르 중 하나다. 한국방송사(放送史)에서 코미디는 어떤 드라마 못지않은 ‘킬러 방송프로그램’ 장르의 하나였다.
되돌아보면 방송코미디는 초창기 소극(笑劇)에서 콩트, 시트콤 및 개그를 거쳐 지금의 개콘과 같은 버라이어티로 거듭 진화를 해왔다. 과거의 ‘코미디언’이란 말이 이제 사라진 대신 ‘개그맨’이란 용어는 우리에게 남았다.
1969년 국내 방송사중 처음 방송된 MBC의 ‘웃으면 복이 와요’. 코미디 프로그램의 시발점이었다.그야말로 ‘시청자를 들었다 놨다’ 했던 ‘국민코미디’였고, ‘코미디언’들은 ‘국민희극배우’였다. 1970~1980년대 주말 황금시간대에 몰린 지상파 코미디프로 시청률은 무려 30~50%대를 오르내렸다. 배삼룡 구봉서 이기동 서영춘 등 숱한 국민배우들이 탄생했고, 안방극장엔 웃음과 함께 번뜩이는 해학과 풍자를 안겨주었다.
특히 1980년대 말 ‘유머1번지’에 출연한 심형래와 김형곤 등 2세대 코미디언들은 지금도 많은 시청자들이 기억하는 추억의 명배우들이다. 또 ‘코미디대행진’ ‘폭소대작전’ ‘新웃으면 복이와요’ ‘한바탕 웃음으로’ ‘코미디총출동’ ‘웃고 또 웃고’ 등 지금은 잊혀졌지만 다양한 코미디프로들이 있었다.
현재 ‘유일한’ 프로그램은 개그콘서트다. 한국코미디계 간판 프로그램이다. 지난 2000년 1월 첫방을 시작한 후 개콘은 무려 14년을 장수하는 대기록을 세우고 있다. 한때 편성시간대가 오락가락했지만 개콘은 일요일 저녁 시청자들이 사전예약하는 ‘나의 TV’ 목록의 인기프로가 되었다. 시청률은 무려 최고 17.6%(AGB닐슨 조사기준)에 달한 정도로 ‘톱5’에 든다. 타 방송사 코미디프로그램이 도중하차 하거나 신장개업했다가 이내 사라졌던 것과 비교해보면 참 경이적인 기록이다.
개콘의 인기비결은 뭘까. 먼저 개콘은 경쟁력있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낸다. 치열한 내부경쟁이 변화와 혁신을 끊임없이 추동함으로써 생겨나는 결과물이다. 개그맨들의 자유로운 아이템 선정, 차별화 포맷, 창의적 발상, 장르융합, 반전있는 시의성, 심리적 카타르시스가 매회마다 두드러진다. 개그맨들은 자유롭게, 주도적으로 자신이 출연할 코너를 꾸민다. 반면 사전녹화 당일 공개홀 방청석 반응이 떨어지면 코너는 여지없이 결방된다. 그래서 3시간의 사전녹화는 개그맨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치열한 시험장이다. 전파를 못타면 당연히 출연료는 없다.
그럼에도 개콘은 철저한 협업체제를 가동한다. 개인기만 좋다고 홀로 돋보일 수는 없다. 생존이 걸린 치열한 경쟁관계이나 출연진 사이 화학적 융합은 필수다. 이런 프로정신이 코너의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10월 보도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관계자 9명 중 6명이 ‘5년 후까지도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을 예능프로’라고 꼽았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데 출연자나 형식을 언제든지 바꾸기 쉬운 유연한 프로그램이라는 이유에서다.
둘째, 프라임타임대 편성이다. 일요일 밤 9시 10분~10시 40분은 황금시간대다. 2개 채널을 가진 KBS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KBS1 ‘9시뉴스’와 MBC SBS주말드라마와 경쟁시간대다. 드라마는 호불호가 강해 시청자 취향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채널은 돌아간다. 넌저리나는 정치뉴스, 20~30년 전이나 별로 달라진게 없어보이는 포맷의 ‘KBS 9시 뉴스'는 오히려 개콘 시청률 상승에 기여한다. 그래서 개콘 전후 SA급 방송광고시간대에 알자빼기 대기업광고 24개가 풀로 찬다.
셋째, ‘박수칠 때 떠난다.’ 1시간 30여분 방송 중 최고인기코너도 됐다 싶으면 빨리 퇴장시키는 ‘강한 여운’ 전략이 있다. 다소 아쉽지만 시청자들에겐 오히려 차기작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촉발시키는 효과를 낸다. 과감한 신인 발탁과 게스트 등 유명인사 초청 등 유연한 부분 포맷변화는 낯익은 코너들이 줄 수 있는 지루함을 잊게 만든다.
넷째, 참여형 오픈 제작시스템이다. 시청자는 물론 PD등 제작진을 방송프레임에 끌어넣는 방식이다. 다소 껄끄러운 스토리도 여과 없이 나간다. 개그맨들의 무(無)대본 애드립도 주목도를 높인다. 개콘 시청자들은 오히려 그것을 즐긴다. 심지어 서수민 PD 등 출연진 주변 인물들 뒷얘기가 코미디의 2대 요소인 ‘웃음과 재미’를 생산해낸다. 출연진 생사여탈권을 쥔 담당PD까지 소재가 될 만큼 유연한 오픈시스템이다. 권위주의는 물론 수직적이지 않은, 대등한 수평적 소통구조를 잘 보여준다. 탈권위와 자유, 창의, 당돌함을 가진 10~30대 젊은층들이 개콘에 공감하는 이유다. 기성세대의 틀박힘을 싫어하는 심리를 개콘은 정확히 짚어내며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이야기다.
다른 지상파 코미디는 어떤가. MBC나 SBS 코미디 프로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의 열정이나 아이템, 창의, 재능 등은 결코 개콘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참 낯설다. 개콘만큼 시청자에게 노출되지 않은 탓이다. 간혹 보면 신설된 것 같거나 신인들만 나오는 듯한 생경함을 준다.
이유는 편성 홀대에 있다. 현재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MBC의 ‘코미디에 빠지다’는 모두 심야시간대에 편성돼 있다. 웃찾사는 매주 금요일 11시 20분, 코빠는 월요일 새벽 0시5분에 프로를 시작한다. TV를 보란 건지, 말라는 건지 희한한 편성이다. 40대 이상이 그 시간대에 코미디를 볼리 만무하고, 시청한다해도 요즘 개그 특성상 공감도는 매우 떨어진다. 초등학생간에도 세대차 난다는 요즘이 아닌가. KBS2도 개콘 출연진들을 투입한 ‘개그스타’를 심야시간에 편성했다가 결국 실패한 전력이 있다.
오히려 SBS MBC보다 빠른 tvN의 ‘코미디빅리그’나 MBN의 ‘개그공화국’을 보는게 낫겠다 싶다. 케이블은 드라마 등 킬러급 콘텐츠들이 코미디 프로의 앞뒤를 받쳐주기라도 한다. 과거엔 정반대였다. 지난 1994년 10월 연예면을 보자. ‘주말 황금시간대 코미디일색, 방송3사 오후 6~8시 집중편성, 선택권 박탈, 시청자 불만’이란 기사들이 넘쳤다. 나아가 SBS ‘코미디전망대’ 등은 수·목 저녁 황금시간대에 전파를 탔다. 그만큼 코미디에 편성우선권을 주었다.
게다가 코미미물은 툭하면 결방이다. 이번 소치동계올림픽 개막과 동시에 ‘웃찾사’와 ‘코빠’는 편성에서 사라졌다. 유일하게 올림픽 기간 개콘만 유일하게 본방을 사수한다.
코미디는 웃음이다. 웃음은 공감에서 나온다. 풍자와 해학은 그 공감을 만든다. 포장마차의 단골메뉴가 되는 정치이야기가 코미디 소재가 될 수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치풍자는 거의 사라졌다. 어느 샌가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듯한 금기영역이 너무 많아졌다.
개콘의 경우 2012년 대선당시 대선후보들의 출연 요청과 일부 개그맨의 대선관련 발언으로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코미디를 결코 코미디로 받아주질 않는 우리 세태를 반영한다. 그 후 민감한 소재를 다루지 않으려다 보니 풍자와 해학이 갈수록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개콘도, 웃찾사도, 코빠도 이 유리벽을 뛰어넘기 쉽지 않다. 성역없는 소재를 대상으로 한 풍자와 해학이 웃음을 낳는다.
웃음이 없는 코미디는 존재이유가 없다. 방송사는 심야시간 편성부터 개선해야 한다. 지금은 ‘개콘의 독주’가 아닌 타방송사의 ‘코미디 홀대’의 결과다. 폐지 아니면 존속 조속히 결단을 내려야 한다. 시청자들이 웃찾사와 코빠도 편하게 보게 하자. 돈되는 드라마 시간대가 정녕 어렵다면, 금요일 저녁시간대도 좋다. ‘제2의 개콘’을 만들겠다는 경영진 의지가 중요하다.
블랙코미디는 보통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사건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 하위장르를 일컫는다. 코미디 홀대야말로 MBC SBS 양대 지상파의 진짜 블랙코미디가 아닐까.
쿠키뉴스 논설위원 겸 방송문화비평가 http://blog.daum.net/alps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