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책] 정리벽에 기록벽… 조선 후기 심노숭 자서전

입력 2014-02-07 01:35


자저실기(自著實紀)/심노숭(휴머니스트·3만2000원)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인 심노숭(1762∼1837) 자서전. 부제는 ‘글쓰기 병에 걸린 어느 선비의 일상’이다. 기인에 가까운 삶을 산 그는 결벽증에 가까운 정리벽에 기록벽까지 있었기에 특별한 일을 겪을 때마다 반드시 붓을 들어 기록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의 글에서는 후대의 평가를 의식한 자기검열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신상이나 일상생활 속 치부, 솔직한 감정 그대로를 오롯이 글로 옮겼다.

“몸은 깡마르고 허약하며, 키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작다. 등은 구부정하게 불룩 솟았고, 배는 펑퍼짐하게 아래로 처졌다. 어려서는 옷을 가누지 못할 만큼 허약해서 혼담을 하러 온 사람이 내 모습을 보고 혼사를 물렀다. 요절할 관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나의 몸’)

점잔 빼며 가식을 부리는 글쓰기를 넘어,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려고 하는 묘사의 진실성은 ‘자저실기’를 관통하는 작가적 신념이라 할 수 있다.

노론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던 아버지 심낙수의 영향으로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늘 지방관을 전전했던 그가 홍국영, 김종수, 심환지, 김귀주 등 당대를 쥐락펴락했던 정객의 실태를 비판하고 폭로하는 장면에서는 일말의 반감이 느껴질 정도의 리얼리티가 묻어난다. 안대회 외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