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민주화 촉진한 지식 네트워크 전문가 시대 종말 불러왔다

입력 2014-02-07 01:31


지식 사회가 처한 위기 진단·미래 전망 책 두 권

지식의 미래/데이비드 와인버거/리더스북/이진원 옮김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미셸 세르/갈라파고스/양영란 옮김


시인 T.S. 엘리엇은 1934년에 시 ‘바위(The Rock)’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가 살면서 잃어버린 인생, 지식에서 잃어버린 지혜, 정보 속에서 잃어버린 지식은 어디에 있느냐, 고.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엘리엇이 느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혼돈 앞에 서 있다. 책에서 정보를 얻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으며, 교실에서 강의를 통해 습득한 지식이 점점 더 그 의미와 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 기존의 지식에 대한 사형선고는 이미 내려졌다. 저마다 다른 시각과 방식으로 지식 사회가 처한 위기를 진단하고 다가올 미래 사회의 지식을 전망한 두 권을 소개한다.

먼저 미국의 뉴미디어 전문가 데이비드 와인버거의 새 책 ‘지식의 미래’다. 지식 인프라의 변화로 정보와 지식의 양은 물론, 우리가 이것을 얻고 체화하는 과정 자체가 획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와 같은 말로는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의 정보를 접한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8년 미국인들이 소비한 정보량은 3.6제타바이트. 1제타바이트는 1섹스틸리언바이트로, 이는 10의 21승인 1,000,000,000,000,000,000,000바이트다. 전자책으로 나온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킨들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2 메가바이트라고 할 때 이는 ‘전쟁과 평화’ 5ב10의 14승’권과 맞먹는다. 이를 두께 15㎝의 종이책이라 가정하고 쌓으면 756억㎞ 높이의 탑이 될 것이다.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9광일. 솔직히 이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 도무지 감을 못 잡겠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지식과 정보는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몇몇 포털 사이트로 접속해 뉴스를 읽고, 쇼핑을 하고, 검색을 하며 산다. 검색어만 치면 수천 수백만 건의 검색 결과가 나오지만 그 중 태반은 쓰레기 같은 정보라 걸러내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종종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그러나 흥미로운 정보에 눈이 팔려 시간을 허비할 때도 많다. 미국 스탠퍼드대 로렌스 레시그가 ‘투명성에 반대하며’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주장했듯 해석이 안 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공개할 경우 정치적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그럴듯해 보이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위험이 다분하다. 각종 ‘카더라 통신’ ‘**괴담’이 대표적인 예다. 인터넷에선 끼리끼리 비슷한 사람들만 모인다. 저자는 이를 인터넷 ‘반향실’이라고 부르며 지식이 과거 어느 때보다 차이를 배제하고 다양성을 잃게 될까 우려한다.

이는 곧 전문가 시대의 종말을 불러왔다. 과거엔 어떤 주제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린 전문가가 권위를 인정받았지만 오늘날에는 그것을 가장 먼저 제기한 사람이 힘을 갖는다. 갈수록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분은 약해지고, 학교와 대학 강단도 존재 근거를 잃어간다. 환경이 이럴진대, 당연히 기업이나 정부 리더의 의사 결정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와인버그는 이런 지식의 네트워킹이 대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되기 위한 5가지 솔루션을 제시한다. 접근을 용이하게 할 것, 자료의 방대함 때문에 생기는 문제 해결을 위해 메타 데이터를 제공할 것, 하이퍼링크로 모든 자료를 연결할 것, 기존의 모든 지식을 인터넷으로 옮길 것, 마지막으로 인터넷 사용 방법과 지식을 평가하는 방식, 특히 서로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을 모두에게 가르칠 것이다.

두 번째 책은 프랑스의 82세 철학자 미셸 세르의 책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다. 그는 이렇게 달라진 방법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젊은이들을 ‘엄지세대’라 부른다. 기성세대와 달리 이들은 누구보다 뛰어난 정보 수집 능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테러리즘, 기후변화 등 전 지구적인 이슈에도 관심을 쏟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계층, 종교, 연령대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야말로 ‘다른 신인류’의 등장이다.

이들에게 무엇을 교육하고 어떻게 지식을 전수할까. 그는 그럴 필요도 없이 인터넷과 사방에 널린 지식이 이미 전수되고 있다고 말한다. 와인버거와 마찬가지로 지구 반대편 대륙의 철학자 역시 지식 시대의 종말과 전문가, 결정권자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포한다.

대신 이 세대에게 전적으로 맡기라고 말한다. 역사상 늘 우매하고 권력자의 지배가 불가피한 ‘대중’을 지식의 민주화로 해방시킨 이들이 만들어나갈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화두를 한두 쪽 정도로 간결하고 짧게 정리한 노철학자의 글은 깊이가 있고 무엇보다 미래 세대를 향한 무한 애정으로 넘쳐난다.

“탑이 되지 못한 바벨은 구전 시대를, 완성된 탑인 피라미드와 에펠탑은 문자의 시대, 기록의 시대, 안정된 국가를 상징한다. 수천 수만의 불빛이 만들어내는 인식의 나무는? 활기찬 새 시대의 상징.”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