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공부문 부패와 전쟁이라도 해야 할 판
입력 2014-02-06 01:51
공공의 도둑에게 나라 살림 맡길 수 있나
우리나라는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이자 세계 8위의 무역대국이다. 그러나 화려한 외형과 달리 속을 들여다보면 형편없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는 148개국 중 25위로 말레이시아보다 뒤처졌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는 177개국 중 46위에 그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는 27위로 바닥권이다.
국가경쟁력을 깎아내리고 한국을 여전히 부패가 만연한 나라로 각인시키는 것은 공공부문의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탓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의 비리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중국이 시진핑 국가주석 취임 이후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며 고위 공직자들의 치부가 간간이 보도되지만 남의 일이 아니다.
고용노동부 공무원이 정부가 관리하는 개인과 기업정보 800만건을 무단으로 조회하고, 이 중 12만건의 개인정보를 빼돌려 국가지원금 58억원을 부정 수급했다가 경찰에 적발된 사건은 우리나라 공무원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민들에게 봉사하고 국가를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공복(公僕)이 아니라 공공의 도둑이다. 가족 10여명을 동원해 가족 명의로 5개 사단법인까지 만들고 국가지원금을 빼돌렸다니 충격적이다. 고용부 직원이 5년간 고용정보 시스템에 맘대로 접속하면서 범죄행각을 벌이는 동안 해당 부처는 까마득히 몰랐다고 한다. 지금도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겨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공기업 간부 부인이 부하 직원의 부인 4명에게 인사 청탁으로 현금 1900만원과 핸드백을 받았다가 기소된 사건도 공공부문 부패가 중증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짝퉁·위조부품을 원전에 납품하면서 수십억원의 뇌물이 오간 원전비리 사건, 세무조사를 봐주는 대가로 한 팀 전원이 뇌물을 챙긴 세무 공무원들, 4대강 비리 사건 등은 공공부문 비리가 개인적 일탈이 아닌 조직적 범죄로 번져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직업윤리를 망각하고 최소한의 양식마저 팽개친 공공의 도둑들에게 이대로 나라 살림을 맡길 수는 없다.
정부는 부패와의 전쟁을 벌인다는 각오로 공공부문 부정부패 척결에 나서야 한다. 역대 정권마다 공직자 비리를 없애겠다고 칼을 뽑았지만 부패는 더 심해졌다. 문제는 그동안 비리를 저질렀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는 공공부문에 유능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상당한 보수를 지급하는 대신 부정·비리에 연루될 경우 사회에서 매장시킬 정도로 무겁게 처벌했다.
그런 의미에서 공직자가 대가성이 없어도 100만원 이상 금품을 수수하면 형사처벌하도록 한 김영란법은 원안대로 임시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뇌물상납 고리를 끊으려면 공직사회의 개방도 필요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공무원 임용제도가 폐쇄적인 국가일수록 공직부패 정도가 심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부처별 개방형 공직 임용과 민간 경력채용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