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바우처 받자고 정보유출 카드사와 거래해야 한다니…
입력 2014-02-06 02:32
전모(32·여)씨는 말 그대로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5일 농협카드를 새로 신청했다. 남들은 개인 정보 유출 사고가 났다며 있던 카드도 해지하는 판에 한 번도 거래한 적 없는 농협에 신규 가입을 한 건 3월 입학을 앞둔 딸아이의 유치원비 때문이었다. 이달 중순에 신청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농협카드가 영업정지를 받으면 지원받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신경이 쓰여 서둘렀다.
정부가 매달 22만원(사립유치원)씩 지원해주는 유아학비를 받는 데 필요한 ‘아이즐거운카드’가 부산 지역을 제외하고는 농협에서만 발급되기 때문이다.
최근 둘째 임신을 확인한 이모(34·여)씨는 임신·출산비 지원을 받기 위한 ‘아이사랑카드’를 발급받는 것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다.
첫아이 때 썼던 KB국민 아이사랑카드로 정부 지원금(바우처)을 이어받으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아마 국민카드는 영업중단 여파로 아이사랑카드를 취급 안 할 것”이라는 안내를 받아서다. 이씨는 “뭐가 뭔지 아무도 정확한 설명을 못 해준다”면서 “국민카드도 찜찜하지만, 다른 은행에 계좌를 열고 카드를 만드느라 새로 정보를 제공하는 게 더 싫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카드사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가운데 정부 정책에 따른 지원금을 받기 위해 신용카드를 ‘반강제’로 만들어야 하는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 또 오는 17일 국민, 농협, 롯데카드의 신규 영업 정지가 예고된 상황에서 정부 지원 연계카드는 이용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이 정확히 정해지지 않아 혼란도 빚어지고 있다.
현재 가장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정부 지원 연계카드는 임신·출산비를 지원하는 ‘고운맘카드’, 유아 보육료 연계 ‘아이사랑카드’와 유아 교육비(유치원비) 지원을 위한 ‘아이즐거운카드’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모라면 거의 대부분 한 종류 이상 이들 카드를 이용하게 된다. 문제는 연계된 카드가 1개에서 많아야 4개 정도에 불과해 문제가 발생해도 대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많은 고객 정보가 유출돼 파장을 키웠던 국민카드의 경우 ‘고운맘카드’와 ‘아이사랑카드’ 두 개가 다 해당돼 정부 지원금 때문에 해지도 못한다는 불만을 낳았다.
유치원비를 받기 위해 필요한 아이즐거운카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부산지역을 제외하고는 농협에서만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월 유치원 입학 시즌을 앞두고 정부 지원금을 신규 신청하는 학부모들은 사고 발생을 확인하고도 농협카드를 ‘반강제’로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금융 당국도 정부 정책 연계 카드의 독과점적 성격을 인식하고 있지만 “각 부처 소관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신 영업정지로 해당 카드사를 이용한 정부 지원을 못 받는 일을 막기 위해 대체수단이 없는 정부 정책 연계 카드는 예외로 한다는 방침만 정한 상태다.
금융위 관계자는 “각 부처와 카드사들로부터 공익 목적 카드나 정부지원 카드 실태를 받아 대체 카드가 있는지 등을 살피고 있다”면서 “대체가 없는 경우 영업정지에서 예외로 하겠지만, 구체적인 것은 영업정지가 시작되는 시점에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