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기름유출' 여수 신덕마을 주민들의 고통 "닦아도 닦아도… 죽고 싶은 심정"

입력 2014-02-05 17:29

[쿠키 사회] 추위가 기승을 부린 5일 오전 10시 전남 여수 신덕마을해변. 방제 상황실 자원봉사자 명단에 이름을 기재한 뒤 방제복과 마스크, 장갑 등 방제장비를 챙겨 입고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이 가까울수록 휘발성 냄새가 코끝에 묻어왔다. 사고 첫날의 심한 악취에 비하면 많이 약화됐지만 여전히 역겨웠다.

흰색과 노란색의 방제복을 입은 500여명의 마을 주민과 GS칼텍스 직원 등이 해변가 앞에 쪼그려 앉아 헝겊을 문지르며 돌과 자갈 등을 닦고 있었다. 지난달 31일 기름이 유출된지 6일이 지났다.

해상에는 가느다랗고 옅은 기름띠들이 가끔 눈앞에 잡힐 뿐 해상방제는 거의 마무리 된 모습이다. 해변의 한쪽 끝에서 ‘갯닦기’ 작업에 열중인 마을 할머니들 옆에 자리를 잡고 헝겊을 바닷물에 적셔 기름이 들러붙은 돌을 문질러봤다. 추워진 날씨 탓에 돌에 들러붙은 기름은 얼어있었다. 손이 아플정도로 몇 번을 문질러도 잘 닦이지 않았다. 쉴새없이 손을 놀려도 수박만한 돌 하나를 닦는데 5분이나 걸렸다. 쪼그려 앉아서 작업하다보니 다리에 쥐가 났다. 바다에서 불어 닥치는 매서운 칼바람에 귀가 시리고 콧물이 뚝뚝 떨어진다. 작업코팅 장갑을 꼈지만 손이 곱을 정도로 시렸다.

6일째 갯닦기 작업을 하고 있다는 김순덕(72) 할머니는 “손이 시리고 허리가 아파도 참을만 혀. 근디 마을 앞 바다가 언제 전처럼 될랑가 몰라”며 콧물과 문물을 한꺼번에 훔쳤다.

김 할머니 옆에 쪼그려 앉은 박선심(75) 할머니는 “하루 내내 작업하고 나서 집에 돌아가면 잠이 안와. 보상이나 제대로 나와야 헐틴디. 우리는 바다만 쳐다보고 사는 사람들여. 말로 (심정을 다 말)할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

닦아도 닦아도 잘 닦이지 않는 돌 하나씩을 부여잡고 부지런히 문질러대는 마을 주민들. 이들에게 갯닦기보다 힘든 것은 따로 있다. 어려운 생계를 이어가는 문제다. 최소한의 빠른 피해보상이 절박한 상황이다.

마을 입구에서 자연산횟집을 운영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조양순(56·여)씨는 “요즘 설 연휴와 방학 기간이라 에 하루 평균 70여만원어치를 팔았지만 사고 이후 여행객 등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당장 생활비가 걱정이라는 것이다.

작은 어선을 몰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영석(76)씨는 “20여년 전 시프린스호 사고 때도 보상비가 실제 피해본 것보다 20분의 1도 안 나왔다”며 “그때 유화제를 뿌리는 바람에 기름덩어리가 바다 밑에 가라앉아 수년 동안 어업을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지금 미역과 새조개 등 25가지 해조류와 어패류를 수확해야 하는데다, 3년 전 바다에 심은 8000여만원 어치의 바지락 종패를 봄에 수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이 피해를 어떻게 보상받아야할지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가슴을 쳤다. 정부의 초기 방제 미숙과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의 부적절한 발언 등에 대한 서운한 마음도 많은 듯 했으나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주민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힘이 돼주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회 회원 20여명은 해변 앞에 ‘밥차’를 마련하고 1200여명 분의 떡국을 끓여주기도 했다.

여수=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