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최공필] 제2차 신흥국 금융위기의 시사점
입력 2014-02-06 01:34
“달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금융체제 보완하고, 역내 국가들과 공동 대응해야”
달러가 글로벌 유동성의 핵심으로 부각된 이래 신흥국들은 안정적 달러 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외환보유고에서부터 다자간 스와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 결과 상당한 유지비용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브레턴우즈Ⅱ 체제가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자체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는 과정에서 늘어난 달러 유동성은 그간의 인식체계를 무력화시켰다. 통상적으로 돈줄이 말라붙는 위기 직후인데도 불구하고 달러는 넘쳐나 신흥국으로 대거 유입됐으며 중국의 경우는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했고 일부는 버블현상을 초래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신흥국가를 둘러싼 자본유출입은 거시건전성 대책에도 경기진폭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 글로벌 위기 직후인 2009년 당시 신흥국으로의 자본 유입으로 인해 선진 경제의 GDP가 3.4% 감소했을 때 신흥국들은 3.1% 증가를 이끌어낸 바 있다. 대부분 신흥국들의 이러한 호전세를 건실한 기초여건 덕분이라고 판단했다.
과거 수년간 신흥국들에 비교적 우호적인 여건을 만들어냈던 자본유입세는 이제 본격적 양적완화 축소와 더불어 대세전환을 맞고 있다. 미국 경기 회복에 상관없이 부채상한이 준수되고 금융체제가 정상화되려면 양적완화가 축소돼야 하고 당연히 신흥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자본유출이 급작스러운 이탈 내지 반전의 형태를 띨 경우 신흥국들의 불안요인을 관리할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경상수지 적자기조 등 기초여건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남미 중심의 신흥국가들은 급작스러운 중단 위험에 노출돼 있다. 반면 보다 건실한 아시아 신흥국들의 경우 일방적 자본유출보다 자본흐름 자체의 변동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글로벌 유동성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재삼 확인된 사실은 제조업 기반이 있는 아시아 경제의 금융부문이 여전히 취약하고 달러의존도가 지나치다는 점이다. 그 원인은 첫째, 대부분 신흥국가들은 외부시장에 의존한 성장엔진에 기대고 있고 둘째, 따라서 확보된 달러자산은 유지비용에도 보험적 성격이 강해서 축적 이외의 활용 대안이 없으며 셋째, 통안증권 등 유동성 조절을 위한 관리부담이 워낙 커서 자생적인 민간 중심의 자본시장 발전여건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러한 이면에는 민간주체들의 자발적 협력이 태동되기조차 어려운 역내 지배구조상의 문제도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아시아지역은 제대로 된 금융기반 구축을 시도조차 못한 채로 일시적 증상 완화에 귀중한 재원을 대거 동원하고 있다.
우리의 큰 잠재력과 역량에도 불구하고 기축통화국의 눈치만 바라봐야 하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보다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한다. 첫째, 자체적 불균형 해소를 위해 기축통화국의 선택이 자국통화 약세를 위한 돈 찍어 내기에만 집중되는 현실은 반드시 극복돼야 한다. 비용이 주변 국가들로 전가되는 현상도 조기 해소돼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버거운 대내 채무 부담을 안고 있어 대응의 여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보완적 성격의 준비자산 공급을 포함한 현 금융체제의 보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둘째, 시장인프라나 법제도, 네트워크 외부성까지 고려하면 실제 달러를 대체할 기축통화는 당분간 존재하기 어렵다. 따라서 최근 중국 등에서 시도하는 개별국가 차원의 국제화 전략 대신 보다 큰 틀에서 역내 기구를 만들어 국제화를 위한 차분한 공동대응에 나서야 한다. 셋째, 아시아는 글로벌 불균형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자체의 준비자산을 공급하는 데 최우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흑자기반 경제에서 채권시장 발전만 외치지 말고 민간 중심의 채권시장 육성이 가능토록 공통지수표시 채권발행 등을 즉각 시도해야 한다. 한·중·일의 경우 정치적 제약만 극복한다면 세계 경제의 3대 축으로서 이미 세계 GDP의 20%가 넘는 경제비중과 무한한 잠재력을 바탕으로 자체적인 금융기반을 조기에 구축할 수 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