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여군도 워킹맘이다

입력 2014-02-06 01:35


여군들은 ‘어렵다’ ‘힘들다’는 말을 좀체 하지 않는다. 위관급에서 영관급장교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제 몫을 해 내고 있는 당당한 그들로서는 힘이 들기는커녕 신나게 일하고 있는지 모른다.

4일 서울 은평구 진흥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열린 ‘2014 여성계 신년인사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전방 부대 방문 시 여성 소대장이 “남자와 똑같이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 놀랐다고 말했다. 전방에서 여성으로서 소대장직 수행이 만만치 않을 텐데 더 철저히 하고 싶다는 열망이 전해졌기 때문일 수 있다.

취재 현장에서 마주치는 여군들은 강하다. 지난해 해군 해상기동 및 대(對)잠수함 훈련을 취재할 때 앳된 얼굴의 여군 소위가 거친 작전을 빈틈없이 수행하는 것을 지켜봤다. 명확하게 지시하고 분·초를 따지며 깐깐하게 상황점검을 하던 그녀가 훈련이 끝나자 환하게 웃으며 병사들 등을 다독이는 모습은 든든했다.

어디 해군장교뿐인가. 자기 몸보다 몇 백 배나 되고 선회할 때면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력하게 작용하는 9G에 가까운 중력을 이겨내고 전투기를 조종하는 여성 공군장교들, ‘독거미’로 불리는 육군 특전사 여군들은 모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구나’라고 읊었던 햄릿의 독백을 무색하게 만든다. 각 군 사관학교 수석입학자와 수석졸업자도 여생도가 차지하기 일쑤다. 실력 면에서는 남성에게 뒤질 것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 힘들지 않을까. 아니면 ‘어려움을 내색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일까.

남성 위주로 운용되는 조직에서 여성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힘들다’는 말은 금기(禁忌)에 가깝다. 도리어 주어진 일들을 별일 아닌 듯 쉽게 처리하거나 지독하게 철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공군 1전투비행단 189비행교육대대 편대장 박지연 소령은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이자 ‘최초의 여성 전투기 편대장’이다. 편대장은 4대의 전투기로 구성되는 편대를 지휘한다. 박 소령은 “남생도와 똑같이 훈련을 소화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했다

결혼한 여군들은 더 힘겹다. 일반 직장에 다니는 일하는 엄마들, 소위 ‘워킹맘’들이 겪지 않는 어려움을 감내해야 한다. 군인들은 평균 2년마다 근무지가 바뀐다. 그러다 보니 잦은 이사는 군인들의 숙명이다. 읍·면 이하 오지(奧地) 근무 비율도 높다. 군인들의 읍·면 이하 지역 근무비율은 국민평균 2.5배, 국가공무원의 5배에 달한다. 별거율도 높아 일반 국민 별거율이 21.2%인 데 비해 군인 별거율은 30.7%에 달한다. 부부와 자녀가 모두 떨어져 생활하는 ‘세 집 살림살이’도 적지 않다. 안정적으로 자녀양육을 기대하기 힘든 여건이다.

군인은 출근이 빠르고 퇴근이 늦다. 수시 발생하는 전투대비태세 유지를 위한 비상대기와 검열이나 키 리졸브·독수리연습 등 군사훈련 중에는 귀가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워킹맘 여군들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전전긍긍한다. 보병출신 첫 여성장군인 송명순 예비역 준장도 “육아문제가 군생활 중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전방부대를 거쳐 국방부에 근무하는 한 여군은 고등학생 딸에게 “1억원짜리야”라는 말을 자주한다. 그간 남의 손으로 키워내느라 들인 비용이 그만큼 된다는 소리다.

정부가 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다. 군도 탄력근무제를 강화하고 전방지역 소규모 어린이집 확보 등 추가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해군 총장은 올해를 ‘여군이 일과 가정 모두에서 활기차게 생활하는 원년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6일 국방부 업무보고에도 모성보호를 위한 대책들이 들어 있다. 국방부의 약속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