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생활임금

입력 2014-02-06 01:35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1914년 1월 5일 당시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5달러의 일당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동종업계 평균보다 두 배 더 높은 수준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적 범죄’라고 성토했다. 포드는 파격적 임금인상의 명분으로 인도주의를 표방했다. “노동자의 임금이 충분치 않으면 자녀들을 제대로 먹일 수 없고,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빠지게 된다. 이들은 허약한 노동자로 자랄 수밖에 없고, 취업한다 해도 산업현장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포드는 노동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 시장임금이 아니라 사회적 임금을 지급한 것이다. 그는 노동자가 곧 소비자로서 기업의 성장을 이끈다고 생각했다. 자동차 노동자가 임금을 모아 자동차를 살 수 없다면 어떻게 열성을 다해 일하겠는가. 실제로 당시 대당 850달러였던 ‘T 모델’ 승용차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차츰 값이 내려 1917년에는 대당 360달러였다. 포드 노동자가 대략 3개월분 임금을 모으면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만큼 임금을 줘야 한다는 포드의 선구적 생각은 오늘날 생활임금 개념으로 이어졌다. 서울 성북구와 노원구는 지난해 전국 처음으로 생활임금제를 공공부문에 도입했다. 생활임금이란 최저임금에서 더 나아가 최소한의 인간적, 문화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적정 소득을 보장하는 기준이다. 상당수 선진국과 그 지방자치단체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생활임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정한 최저임금(시간당 5210원)이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38%에 그치는 반면 성북구와 노원구의 생활임금은 평균임금의 절반에 서울시 생활물가 조정분(8%)을 더해 평균임금의 58%로 산정한다. 작년 생활임금은 135만7000원(시간당 6490원)이었다. 올해에는 143만2000원(6850원)으로 4일 결정됐다. 생활임금은 성북문화재단 등에서 일하는 청소·경비·주차·시설관리 등 계약직 110명에게 지급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경제의 장기 침체로 인해 세계경제가 저성장의 덫에 빠졌다. 만성적 수요 부족의 원인으로 최근에는 노동분배율 저하가 부각되고 있다. 뒤늦게나마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캐머런 영국 총리도, 아베 일본 총리도 모두 최저임금과 임금 인상을 옹호하고 나섰다. 투자 활성화와 기업하기 좋은 환경만 외칠 것이 아니라 실질임금 인상 필요성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다. 공공부문부터 생활임금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