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여성CEO 열전] ⑤ 사이버디스티 홍미희 대표

입력 2014-02-06 02:35


학맥·인맥 없지만 하나님께서 응원

반도체 온라인 유통 아이디어 결실


반도체 부품 온라인 유통업체인 사이버디스티 홍미희(52) 대표이사는 1세대 벤처 창업자다. 그는 정보기술(IT) 붐이 한창이던 1999년에 이 회사를 세웠다. 2000년 후반 벤처 거품이 꺼지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서 적지 않은 벤처기업들이 쓰러졌지만, 그의 회사는 줄곧 성장세를 이으며 살아남았다.

홍 대표이사는 말단 직원에서 출발해 사업가로 변신한 ‘자수성가형 CEO’다. 반도체 업계에서 15년간 경험을 쌓았고, 동종업계에서 창업해 15년간 회사를 이끌었다. 사업을 하면서 신앙이 깊어졌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책임감’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신앙인으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길을 가고, 벤처 1세대로서 성과로 후배들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지난달 27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1로 본사에서 홍 대표이사를 만났다.

실무형 CEO

“여직원이 업무능력과 관계없이 ‘사무실의 꽃’으로 대우받는 게 싫어 외국계 회사를 선택했습니다.”

반도체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를 묻자 홍 대표이사가 한 말이다. 83년 한양여대 영어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반도체 회사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한국 지사에 입사했다. 국내 기업보다는 외국계 기업에서 여성이 능력을 인정받기 쉽다는 판단에서다.

영업 관리 부서에서 일하게 된 그는 커피 심부름부터 서류 업무까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늦게 일하고 거래처 미팅 준비에도 남들보다 더욱 신경을 기울였다. ‘언젠가 사업을 하겠다’는 야망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뛰어난 성과를 낸 그는 조직에서 인정받을 뿐 아니라 경쟁사도 욕심 내는 인재가 됐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홍 대표이사는 경력관리를 위해 내로라하는 회사로 3번 옮겼다. 87년 미국 반도체·전자 기업인 내셔널 세미컨덕터를 거쳐 90년 모토로라로 이직한 그는 91년 국내 기업인 석영전자(현 석영브라이스톤)로 옮겼다. 외국계 기업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을 국내 기업에 적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영업 관리뿐 아니라 구매, 마케팅, 전산분야를 아우르며 일하던 홍 대표이사는 98년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반도체를 온라인으로 유통해 보면 어떨까?’ 즉시 신사업 아이디어로 정리해 회사에 제출했다. 그러나 회사는 ‘추진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반도체 부품 온라인 유통에 확신이 있던 그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반도체 업계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어느 정도 감이 왔어요. 그래선지 처음 사업에 뛰어들면서도 실패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어요. 대신 ‘중학교 때부터 막연히 꿈꾸던 사업가가 드디어 되는구나’란 설렘이 컸지요.”

사이버디스티를 창업한 그는 2003년부터 온라인 유통 관련 비즈니스 모델을 특허 등록했다. 세계 여러 기업의 제품을 빠르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자 매출은 곧 상승세를 탔다.

그러나 사업은 이내 어려움에 부닥쳤다. 유통업 특성상 자금 확보가 중요했지만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것. 인맥과 학맥이 거의 없던 그는 금융권 대출로 자금을 마련하려 했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았다. 남성사업가와 달리 배우자가 연대보증을 설 것을 요구해서다.

약점을 극복키 위해 그는 직접 뛰기로 했다.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와 기업경제연구소 포럼 모임 등 적극적으로 대외활동에 참여했다. 인맥을 넓힐 뿐 아니라 벤처기업을 위한 정부제도와 산업흐름, 경영철학 등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남성기업인은 학연이나 지연으로 자금조달하고 전략적 제휴도 하는데 여성기업인은 그런 점에 약하더라고요. 벤처 1세대 여성기업인으로 후배를 이끌겠다는 책임감이 든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이를 위해 회사에 여성 인재를 대거 중용하고 실무를 진두지휘해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팔 걷어붙이고 바닥에서 챙긴 여성 인재가 우리 회사에서 잘 성장했을 때 무엇보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신앙은 인생의 나침반

수천종의 반도체를 취급하는 회사는 현재 삼성, LG,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을 비롯한 1300여 거래처를 확보했다. 창업 이래 계속된 성장으로 매출 100억원가량을 달성했으나 최근 하락세로 돌아서 70억원 정도로 감소했다. 홍 대표이사는 창립 이래 현재가 가장 위기라고 진단했다.

“15년간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매년 매출이 성장하고 장기근속자도 많았지요. 그러다 갑자기 매출이 줄어드니 마음이 겸손해지더군요. 사업을 할수록 신앙이 깊어지는 걸 느낍니다. 제 의욕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생각도 들고요.”

매일 오전 5시에 출근하는 그는 회사를 위한 기도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신앙을 삶의 나침반이자 중심추로 정의한 홍 대표이사는 위기일수록 감사하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감사가 위기로 위축된 기업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믿어서다. 기도 내용을 설명하던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최근 묵상하는 성경구절을 소개했다. “다윗에게 복이 있고 큰일을 행하며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는 사무엘상 26장 25절 말씀을 항상 기억하려고 해요. 힘들 때마다 제게 책임감을 일깨워 주거든요.”

직원 역량 강화로 작지만 내실 있는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라는 홍 대표이사는 크리스천 여성기업인에게 항상 기도하며 감사할 것을 조언했다. “사업이 잘 되면 누구나 교만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주님께 기도하게 되지요. 기도는 교만을 막고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기도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후배기업인들이 됐으면 합니다.”

홍미희 대표 약력 △1962년 서울 출생 △83년 한양여대 영어과 졸업 △2009년 한국사이버외국어대 영어영문과 졸업 △2014년 동국대 경영대학원 재학 중 △99년 사이버디스티㈜ 창업 △2007년 대한민국e비즈니스대상 산업자원부 장관상 △2012년 대한민국 벤처창업대전 벤처기업대상 지식경제부 장관상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