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내가 김동리 선생과 결혼해서 산 기간의 이야기이지만 정확하게는 내가 그를 만난 스물네 살 때부터 시작된 이야기이지요.”
14년간의 침묵을 깨고 장편 ‘꽃들은 어디로 갔나’(해냄)를 낸 소설가 서영은(71)씨가 4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시절의 김동리(1913∼1995)를 만나 그의 세 번째 부인으로 살아온 인생 자체가 소설보다 더 극적이지만 자전적인 소재를 소설로 쓰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는 소설 제목과 관련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지만 꽃의 입장에서 그건 상처일 것”이라며 “꽃이 스러질 때 하나의 비애를 거쳐 열매로 변환되고 다시 씨앗으로 가서 또다시 꽃이 되는 그런 순환을 인간도 피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소설쓰기가 더 힘들었을까.
“자기 연민이나 가까운 이에 대한 연민을 배제한 채로 그 정황의 깊이 쪽으로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무척 고민했지요. 그럴 때마다 동리 선생이 생전에 들려준 ‘사랑은 목숨 같은 것, 목숨을 지키려면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말을 상기하곤 했지요. 영육이 입은 상처에서 피가 줄줄 나는 것 같은 상황을 무수히 넘어오면서 꽃이라는 건 상처로 만든 아름다움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소설은 강호순, 박 선생, 방 선생 등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각각 서영은, 김동리, 김동리의 두 번째 부인인 소설가 손소희(1917∼1987)의 분신임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김동리와 첫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작품 내용에 대해 시비를 걸어올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할 때부터 이건 내 삶의 자취이고 그 삶에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에서 시작했기에 누가 어떤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의해 내게 돌을 던진다면 의연하게 맞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기독교라는 신앙 때문에 이렇게 당당하게 진실 앞에 나설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동리 선생이 말년에 앉았던 휠체어를 1인칭으로 한 후속작을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14년간 침묵 깬 소설가 서영은 “상처로 피운 꽃… 김동리 선생과의 삶 이야기”
입력 2014-02-05 02:31 수정 2014-02-05 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