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능의 법칙’ 주연 엄정화 “40대 사랑, 20∼30대와 다르지 않아요”

입력 2014-02-05 01:34


한때 방송작가로 활동한 주부 이수아(38)씨. 그는 2012년 아릿한 첫사랑의 아픔을 담담하게 담아낸 영화 ‘건축학개론’을 관람했다. 당시 영화관엔 40대로 보이는 여성 관객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극장문을 나설 때 관객들이 첫사랑 추억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지켜보다 이런 생각을 했다. ‘40대 여성은 누구의 ‘엄마’로만 살아야할까. 이제 우리한테 사랑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까.’

이씨는 40대 여성들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 ‘관능의 법칙’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로 그해 열린 ‘제1회 롯데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14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거둔 성과였다. 이후 ‘관능의 법칙’은 영화로 만들어졌고 개봉(13일)까지 하게 됐다.

‘관능의 법칙’ 주인공인 신혜 역은 배우 엄정화(45)가 맡았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 한 카페에서 만난 엄정화는 “40대의 사랑을 다뤘지만 20대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지난주 시사회가 끝나고 온라인에 올라온 영화평 중 이런 평가가 있더라고요. ‘40대 사랑을 다뤘지만 20대나 30대의 러브 스토리와 다를 게 없다.’ 실제로 저 역시 같은 생각이에요. 나이를 먹는다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달라지는 건 아니죠. 대신 나이가 드니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은 많이 들어요. ‘사랑을 할 땐 열정적으로 사랑하자. 사랑할 수 있을 때 많이 사랑하자.’”

‘관능의 법칙’은 엄정화가 2003년 출연한 영화 ‘싱글즈’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30대를 바라보는 여성들의 일과 사랑 이야기를 꾸밈없이 그려낸 ‘싱글즈’처럼 ‘관능의 법칙’은 40대 여성들의 로맨스를 리얼하게 담아낸다. 연출을 ‘싱글즈’를 만든 권칠인(54) 감독이 맡았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싱글즈’는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이었어요. 촬영하는 내내 ‘싱글즈’를 찍던 때가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여성들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 다시 출연할 수 있게 돼 기뻤어요.”

‘싱글즈’에서 엄정화는 위암으로 투병하다 2009년 숨을 거둔 고(故) 장진영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관능의 법칙’ 촬영에 들어가기 전 ‘싱글즈’를 다시 봤다고 한다. 엄정화는 “영화를 보면서 (장진영이 이젠 없다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당시엔 장진영도, 나도 참 예뻤던 거 같다”고 말했다.

영화엔 엄정화 외에도 조민수(49) 문소리(40) 등 베테랑 여배우가 다수 출연한다. 조민수는 멋진 애인을 둔 ‘싱글맘’ 해영 역을, 문소리는 남편의 외도로 한바탕 소동을 겪는 미연 역을 열연했다. 엄정화가 맡은 신혜는 케이블 방송국의 예능 PD로 매사에 당당한 ‘골드 미스’다. 이들은 불혹을 넘긴 나이지만 셋이 모이며 언제나 소녀처럼 수다를 떨며 서로의 삶을 격려하고 때론 위로한다.

“극중 인물들처럼 저 역시 여성으로서 마흔을 넘긴 나이가 콤플렉스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하지만 세월이란 건 누구에게나 공평한 거잖아요. 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즐겨야죠(웃음).”

1993년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데뷔한 엄정화는 각양각색 영화에 출연하며 자신의 연기세계를 넓혀왔다. 가수로서의 입지도 확고하다. 그는 “지금의 난 최전방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40대 여배우로서, 40대 여성 가수로서의 불안감이 묻어나는 발언이었다.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요즘엔 누가 내 신곡을 기다리기나 할까 회의가 들 때도 있지만 꾸준히 음반을 내고 싶어요. 진짜 좋은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하고요. 나 자신을 확 바꿔야 가능한, 그런 배역을 맡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