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유럽 부패 “EU 28개국 모두 오명”… 첫 ‘반부패 보고서’ 실태

“유럽에 만연한 부패를 보면 숨이 막힌다.”

유럽연합(EU) 28개 전체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된 첫 ‘반부패 보고서’를 발표한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내무 담당 집행위원의 말이다. 3일(현지시간)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EU 전체 회원국의 부패로 인한 연간 손실액이 1200억 유로(약 17조5560억원)로 추정된다. 회원국 전체의 1년 예산과 비슷한 수치로 회원국 전체 국내총생산(GDP) 11조7000억 유로의 1%에 해당한다. 말름스트룀 집행위원은 “단지 추정치에 불과할 뿐 실제 액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며 “분명한 것은 유럽에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유럽과 남유럽이 최악=EU 여론조사 기관인 유로바로미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회원국 전체 응답자 10명 중 8명가량은 자국에 부패가 만연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2명 중 1명은 지난 1년 사이 부패를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했다고 밝혔고, 기업 10곳 중 4곳은 부패로 인해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응답했다.

국가별로 보면 동유럽과 남유럽 국가가 심각했고, 북유럽 국가들과 영국·독일 등 전통 선진국들은 상대적으로 부패가 덜했다. 자국 부패가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는 응답자 비율(평균 76%)이 높은 국가는 그리스(99%), 이탈리아(97%), 리투아니아·스페인·체코(95%) 등이었다. 덴마크(20%), 핀란드(29%), 스웨덴(44%) 등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자신의 일상이 부패에 영향을 받는다는 응답자(평균 26%)는 스페인·그리스(63%), 키프로스·루마니아(57%), 크로아티아(55%) 등이 높은 반면 덴마크(3%), 프랑스·독일(6%)은 낮았다.

지난 1년 동안 부패를 직접 목격했거나 경험했느냐는 질문에는 리투아니아(25%), 슬로바키아(21%), 폴란드(16%) 등의 응답자 비율이 높았고, 핀란드·덴마크(3%), 몰타·영국(4%)은 낮은 편이었다.

공공서비스를 받기 위해 뇌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평균 73%였다. 이 비율이 높은 국가들은 그리스(93%), 키프로스(92%), 슬로바키아·크로아티아(89%) 등이다. 부패로 인해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U 내 기업의 43%는 부패로 인해 영업에 장애를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체코(71%), 포르투갈(68%), 그리스·슬로바키아(66%)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의 어려움이 컸다.

◇깨끗한 유럽? 이미지 타격…자기비판 없는 EU에 대한 비판도=이번 보고서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부패가 덜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EU 지역의 이미지에 오점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고서는 유럽 내 전통 강국인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에도 쓴소리를 했다. EU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에 대해서는 공직 수행 후 민간기업에 일자리를 잡는 소위 ‘회전문 현상’이 최근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언급했다. 프랑스는 공공서비스 조달 부문과 국제거래 분야의 부패 방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영국은 정당 기부금과 선거 비용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됐다. 말름스트룀 집행위원은 “부패는 공공기관의 신뢰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역내 시장 및 외국인 투자, 납세자 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미크로스 마샬 국제투명성기구 부이사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기업과의 정경 유착으로 인해 유럽 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고 국민들은 그들의 이익이 보호받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EU의 집행 기관들과 각종 기금들에 대한 자기비판이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EU 집행 기관에서도 각종 부패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존 달리 전 EU 보건담당 집행 위원은 2012년에 측근이 한 담배회사에 6000만 유로(약 887억원)의 뇌물을 요구한 혐의로 기소되자 사퇴하기도 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한 유럽의회 의원을 인용해 “EU 집행위원회는 자기 부패를 분석하고, 부패 문화를 바꾸려는 대신 덮으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