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경호] 황의 법칙
입력 2014-02-05 01:32
진공관을 대체한 ‘트랜지스터’ 집적회로(IC)는 전자대혁명이었다. 진공관이 손바닥 크기만한 IC로 작아졌지만 성능은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IC는 에디슨의 전구 이상으로 인류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IC 개발 6년 후인 1965년. 인텔 창립자인 고든 무어는 “IC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수가 매년 2배씩 10년간 늘어난다”면서 “IC 가격은 더 싸지고, 성능은 더 강력해진다”고 일렉트로닉스지에 기고했다. 그 후 무어 연구팀은 실제 증명해냈다. 캘리포니아공대 커버 미드 교수는 이를 ‘무어의 법칙’이라 명명했다.
1970년대 IC 집적도는 무어의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속도로 증가했다. 1980년대 말 인텔은 무어의 법칙을 ‘마이크로프로세스의 파워와 성능, 가격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하는 것’이라고 부분 수정했다.
1988년 이건희 삼성전자 사장은 삼성반도체를 이끌 브레인을 찾았다. 때마침 MIT 공학박사 출신으로 스탠퍼드대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던 36세 연구원이 눈에 들었다. 삼성반도체연구소에 합류한 그는 3년 만에 이사로 파격 승진했다. 황창규 박사였다.
1994년 8월 그는 ‘이건희 특명’인 256메가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일본과 미국 반도체 회사들이 발칵 뒤집혔다. 삼성의 개발 속도는 ‘무어의 법칙’을 능가했다. 서울 태평로 삼성전자 기자실은 ‘세계 최초’를 알리는 특종 뉴스를 쏟아냈다.
2002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국제반도체 학술대회. 삼성반도체 기술총괄 사장인 그는 ‘메모리 신성장론’을 발표했다.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늘어난다.” ‘황의 법칙’이다. 반신반의했지만 2007년 64GB낸드플래시 메모리까지 매년 집적도를 2배 높인 신제품을 내놓았다. ‘무어의 법칙’은 깨졌다.
그런데 2008년 삼성은 128GB낸드플래시를 내놓지 않았다. ‘황의 법칙’도 깨졌다. ‘기술력 부족’인지 ‘시장수요 부진’인지 추측만 무성했다. 그 사이 애플은 아이폰으로 시장을 석권했다. 창의 없는 기술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자성도 나왔다. 황 사장은 떠났다.
지난 1월 27일 그가 KT 회장으로 돌아왔다. 일성은 ‘도전과 융합, 소통’이었다. 벌써 KT에 혁신 바람이 거세다. 제 몸도 못 가누는 ‘공룡’이란 힐난을 샀던 KT 조직과 인원은 대폭 감축됐다. ‘더 작고 더 강한’ 그의 혁신 드라이브는 많은 과제를 떠안고 있다. KT에 다시 ‘황의 법칙’이 통할지, 아니면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 모두들 주목하고 있다.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