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홍하상] 니시키 시장의 상인정신
입력 2014-02-05 01:33
일본 니시키(錦) 시장은 교토에서는 가장 전통 있는 시장이다. 1603년에 문을 열었으니 400년도 더 됐다. 이 시장에는 120개 넘는 가게가 성업 중이다.
사바 스시로 유명한 이요마타(伊豫又)가 1617년에 개업해 400년 가깝게 영업 중이고, 주방용 칼 등 부엌용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아리쓰구(有次)가 1619년에 개업, 그 뒤를 잇는다. 그 외에 두부로 유명한 유바키치, 일본 요리의 긴마타쓰 등도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대감으로 뭉친 日 점포들
일본에서도 재래시장이 이토요카도, 이온, 주스코 등 대형 메가마트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니시키 시장은 예외다. 오히려 대형 메가마트들이 울고 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니시키 시장은 우선 깔끔하다. 새벽 6시, 저녁 7시 등 하루에 두 번씩 가게 주인들이 브러시를 들고 나와 물을 뿌려가며 가게 앞을 정성껏 닦기 때문이다. 둘째는 간판에 개성이 철철 넘친다. 간판 자체가 예술이다. 셋째는 단골손님과 고객이 10∼20년이 아닌 3∼4대에 걸쳐 거래를 해왔고, 그러다 보니 서로를 걱정해주는 정이 있다.
게다가 동종 점포끼리 경쟁 관계가 아니라 동반자 의식을 가지고 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일본 격언처럼 서로를 자극하고 격려하는 끈끈한 유대 의식이 있다. 그리고 니시키 시장에서는 교토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식료품과 특산품들로 상품이 진열되어 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메가마트들 때문에 재래시장이 장사가 안 된다고 울상이다. 정부는 재래시장 상인들을 돕기 위해 간판을 통일해 주었다. 이어 시장 바닥이 질척거린다고 해서 대리석을 깔아 주었다. 비 오는 날엔 손님이 안 온다고 해서 돔형 지붕도 씌워 주었다.
화장실이 재래식이어서 불편하다고 모두 양변기로 바꾸어 주었다. 메가마트들처럼 주차장이 없어 장사가 안 된다고 해서 주차장도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쏟아부은 돈이 연간 6000억원에 달했다. 그런데도 장사가 안 된다고 해서 대형마트들에 의무적으로 한 달에 두 번씩 의무휴업을 하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재래시장의 매출은 거의 늘지 않았다.
왜일까. 간판 통일은 오히려 몰개성화를 가져왔다. 규격은 제한하되 업소가 취급하는 품목에 따라 개성화를 추구했어야 했는데 거꾸로 갔다. 대형마트들이 한 달에 이틀 쉬자 고객들은 그날 하루 쇼핑을 쉬었다가 그다음 날 찾아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직업정신 부족한 우리 상인들
30대 주부들이 재래시장을 안 찾는 첫 번째 이유는 흥정하기 싫어서다. 재래시장의 노회한 60대 상인을 흥정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가격표라도 붙여 놓으면 좋으련만 그게 별로 없다. 우리나라 재래시장은 그 지방만의 특산품이 없다. 강원도의 재래시장에서도 강원도의 산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채소를 가져다 판다. 굳이 거기서 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중대한 문제도 있다. 니시키 시장의 경우는 초밥집 이요마타가 현재 22대째 장사를 하고 있고, 여타의 가게들도 3∼4대는 흔하다. 젓가락 가게 이치하라가 8대째, 빗 가게 주산야도 5대째다. 즉 자신이 하는 일을 대물려가며 하고 있고, 거기에 목숨을 거는 상인정신이 있다.
한데 우리는 자식들에게 자기가 하는 배추 가게, 반찬 가게, 국밥집 등을 물려주려 하지 않는다. 자식들이 공부 잘해서 대기업에 다니기를 바란다. 자신이 하고 있는 생업은 당대에서 끝이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 정신이 떨어진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겐 직업정신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홍하상(논픽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