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구글 때문에 ‘부글’… 뒤집어진 샌프란시스코

입력 2014-02-05 01:32 수정 2014-02-05 17:13
세계 최고 IT기업이 싫다고 들고 일어난 주민들… 무슨 일이

테크놀로지의 중심지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멀지 않은 도시 샌프란시스코. 지척에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내로라하는 정보통신(IT)기업이 밀집해 우수한 인재가 몰려들고 이들이 개발한 ‘혁신’이 가장 먼저 도달해 새로운 부를 창출할 것만 같다. 가장 앞선 동네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도 들 터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넘게 이들 IT기업과 싸우고 있다. 시민들은 테크놀로지가 삶의 터전을 망쳐놨다고 주장한다. IT기업이 정의에는 무관심하고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만들고 있다고 소리친다. 샌프란시스코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2013년 12월 20일

출근 인파로 한창 북적이는 오전 7시45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 ‘미션’ 전철역에 성난 70∼80명의 사람들이 유리창이 짙게 선팅된 2층 버스를 막아섰다. 세계 최고 IT기업으로 꼽히는 구글이 운영하는 통근버스(구글 버스)다. 매일 샌프란시스코 주거지에서 구글 본사가 있는 실리콘밸리 마운틴뷰로, 또 저녁이면 실리콘밸리에서 샌프란시스코 등지로 구글 직원들을 태워 나르고 있다.

“공돌이들, 너희는 여기서 환영받지 못한다(Techies, Your World is Not Welcome Here).”

“구글 꺼져라(Fuck off Google).”

구글 버스 앞에서 성난 시민들이 든 현수막은 살벌했다.

같은 시각 샌프란시코의 동쪽 위성도시 오클랜드의 ‘웨스트 오클랜드’ 전철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져 구글 버스가 발이 묶였다. 감정이 격해진 일부는 구글 버스 유리창을 깨부쉈다. 버스 타이어에 구멍이 났다. ‘맥아더’ 전철역에서는 또 다른 최고 IT기업인 애플 통근버스가 시위대에 가로막혔다.

이른바 구글·애플 통근버스 봉쇄 시위였다. 앞서 9일에도 성난 시민들이 곳곳에서 구글·애플·페이스북 통근버스를 에워싸고 항의했다.

2013년 5월 5일

사실 성난 민심의 전조는 5월부터 있었다. 당시에도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이 ‘미션’ 전철역 인근에 모여 구글 버스 미니어처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때만 해도 퍼포먼스로 분풀이가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7개월 만에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번엔 버스 미니어처가 아닌 실제 버스로 몰려갔다.

“혁신이 양극화를 초래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구글 버스로 몰려간 시민 일부는 스스로 단체를 결성했다. ‘퇴거 없는 샌프란시스코(Eviction Free San Francisco)’가 그중 하나다. 이들은 구글 같은 IT기업들 때문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있다고 항변한다. 실리콘밸리에 들어선 굴지의 IT기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이 인근 샌프란시스코로 몰려오면서 사무실, 아파트, 주택 임대료가 치솟아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샌프란시스코의 임대료는 최근 몇 년간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지난해 아파트 임대료 상승률이 미국 도시 중 가장 높았다. 미 부동산 전문 인터넷사이트인 ‘트룰리아’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에서 방 2개짜리 아파트 임대료는 평균 월 3250달러(약 350만원)로 지난 1년 간 10%나 상승했다. 같은 기간 뉴욕의 아파트 임대료 인상률은 2.8%에 그쳤다.

반면 치솟는 임대료를 내지 못해 주거지에서 쫓겨나는 이들의 수는 계속 늘고 있다. 구글 버스 운행이 시작된 2000년 초반부터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2000년 이전만 해도 강제 퇴거 건수가 1000건을 밑돌았으나 2005년 2000건, 2008년 3000건을 돌파해 지난해 8월 말 기준 3705건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샌프란시코 평균 집값이 100만 달러(약 10억8000만원)를 넘어섰다는 뉴스가 나왔다.

구글 버스의 공영버스정류장 독점 문제도 심각했다. 구글 버스 말고도 애플, 페이스북, 야후, 트위터 등 실리콘밸리 내 20여 곳 IT기업이 통근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특별한 규제 없이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의 200여개 공영버스정류장을 거쳐 간다. 구글 버스만 해도 매일 100대가 샌프란시스코를 들고난다. 이 때문에 공영버스정류장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일상적인 불편에 시달려 왔다.

그들만의 버스, 그들만의 리그

집값이 치솟고 교통이 불편해진 문제라면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찾아가 불만을 하소연하면 될 일이다. 굳이 구글 버스에 대고 화풀이할 이유가 있었을까.

미 IT전문 잡지 ‘와이어드’는 지난해 5월 구글 버스의 이동 경로를 분석했다. 며칠 간 구글 버스가 어디에서 직원들을 태우고 내리는지 지켜본 끝에 ‘노선 지도’를 완성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대로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해온 미션(Mission) 지역 위주일 거라고 추측한 건 오산이었다. 전통적 부촌인 놉 힐(Nob Hill), 퍼시픽 하이츠(Pacific Heights), 마리나(Marina) 지역을 드나들었다. 와이어드는 “통상 대중교통 노선은 노동자들이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는데 구글 버스는 부촌을 중심으로 노선이 만들어졌다”며 “구글 버스가 샌프란시스코를 정확히 양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구글 버스가 지나가지 않는 지역과 지나가는 지역 간 빈부 격차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미션 지역 같은 월급쟁이가 많이 살던 지역도 ‘고급 주택화(Gentrification)’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액 연봉자들이 도시로 들어와서다. 이 지역에 사는 한 주민은 “오래전부터 이곳엔 멕시코 출신이 많이 살았는데 어느 샌가 외곽으로 떠나버렸고 지금은 젊고 유능한 백인이 이웃이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건물주가 원할 경우 세입자를 내보내고 건물을 매각할 수 있도록 한 캘리포니아의 ‘엘리스 법규(Ellis Act)’가 한몫한다. 불경기에 고만고만한 임대료 대신 샌프란시스코에 들어오려는 수요자에게 건물을 비싼 값에 팔아 이득을 남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건물주가 많아져서다. 이 때문에 어거지로 쫓겨난 세입자들이 늘었고 지역 신문에는 ‘강제 퇴거(Eviction)’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중심에서 바깥으로 밀려난 시민들에게 구글 버스는 단순한 버스가 아니다. 도시 풍경을 바꿔놓은 원흉이자, 넘어설 수 없는 장벽과도 같다. 구글 버스는 안락한 가죽의자로 꾸며져 있고 무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며 앞좌석에는 애완견을 앉힐 수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약 3만5000명의 IT 엘리트들이 회사가 제공하는 이런 쾌적한 통근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

시민들이 구글 버스를 공격한 날, 뉴욕타임스는 “커져가는 빈부 격차에 ‘디지털 부르주아’에 대한 샌프란시스코 시민의 반감이 폭발했다”고 지적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은 “샌프란시스코 일대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억만장자가 집중된 곳인 동시에 미국 내 노숙인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고 전했다.

2014년 1월 7일

구글은 구글 버스가 도시 분열의 상징이 돼 비판이 커지자 대안을 제시했다. 버스 대신 통근 요트를 운행하겠다는 거였다. 샌프란시스코 요트 사설업체와 손잡고 자사 직원들을 고속 페리선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한번에 149명까지 탑승할 수 있었다. 물론 고급 요트였다.

구글은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에게 어떤 불편도 끼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 약만 올리는 꼴이 됐다.

구글 직원들도 나름대로 억울함을 호소한다. 구글 버스를 통해 수천 명의 직원이 차를 몰지 않아 교통체증을 감소시키고, 환경오염도 줄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주거환경도 개선됐다고 주장한다. 구글 버스는 ‘혁신’ 그 자체라는 게 이들 입장이다. 크리스털 숄츠 구글 프로그래머는 “구글 직원 모두가 억만장자는 아니다”며 “나 역시 여전히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다”고 토로했다.

2014년 1월 22일

샌프란시스코 시(市)도 한 달가량 논의 끝에 해법을 내놨다. 에드 리 시장은 오는 7월부터 구글 등 IT기업들로부터 통근버스가 지나는 각 정류장마다 1일 사용료로 1달러씩을 받기로 했다. 이를 통해 시는 18개월간 약 150만 달러(약 16억원)를 벌어들일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시민들은 ‘미봉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글 버스 봉쇄시위를 주도한 에릭 맥엘로이는 “서민들이 생활 터전에서 쫓겨나는 행태가 중단되고 이 지역 토박이들이 원래 살던 아파트에서 계속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시위대가 주장하는 핵심”이라며 “사용료 징수는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는 IT기업 유치가 고용 효과를 유발,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시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시민은 “IT업계 특성상 개발자들은 지역·국가를 망라한 각지에서 모여든다. 실리콘밸리에서 우리가 일할 자리는 없다”며 “소수만 돈을 벌고 있으며 분명한 건 이 지역 사람들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테크놀로지가 가져오는 혁신이 좋기만 한 걸까.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