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가곡 ‘주기도문 원본’ 어떻게 세상에… 맬롯 숨지기 전 유학생 조민구씨에 선물

입력 2014-02-04 02:34


3일 국민일보를 통해 악보 원본이 처음 공개된 ‘주기도문(The Lord’s Prayer)’은 미국 음악가 앨버트 헤이 맬롯(1895∼1964)이 1935년 작곡한 성가곡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맬롯은 프랑스 파리에서 음악을 공부한 뒤 할리우드에서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했다. ‘블랙매직’(1929) ‘신비의 바다 레이더’(1940) ‘마법의 숲’(1945) 등 20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주하면서 120여 곡의 클래식뿐만 아니라 뮤지컬과 발레 음악도 다수 남긴 그의 왕성했던 생전 활동에 비해 그에 대한 기록과 사진이 거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족이 없는 데다 생전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은 때문으로 보인다. 1960년대 초 할리우드의 ‘셔먼스쿨 오브 뮤직’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한국에서 유학 온 제자 조민구(당시 28세)씨를 만났다.

육군군악대와 KBS교향악단 플루트 연주자로 활동하던 조씨는 196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맬롯의 지도 아래 음악을 공부했다. 맬롯이 폐렴으로 숨지기 한 해 전인 63년 조씨에게 ‘주기도문’ 악보와 친필사인이 있는 자신의 사진을 선물했다. 조씨는 이후 69년 미국 최초 한인 교향악단인 로스앤젤레스 코리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LAKPO)를 창단하고 초대 지휘를 맡았다.

창단 목적은 다민족이 살아가는 LA에서 음악을 통해 이웃들과 문화교류를 넓히고 한인 음악인 육성을 위해서였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의 선율을 선사하려 애쓴 스승 맬롯의 음악세계를 잇는 것이었다. 조씨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휘자로서는 세계 최고의 상인 ‘프릭스 마르텔(Prix de Martell)’을 1991년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수상했다.

스승의 유품을 50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하던 조씨는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해 7월 LAKPO 주최로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열린 ‘평화음악회’에 참가한 장기웅(55) 뮤즈심포니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에게 건넸다.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평화음악회’를 국내외에서 수차례 진행해온 장 감독과는 2011년부터 친분을 쌓은 각별한 사이였다.

조씨는 “스승의 음악을 대표하는 악보를 혼자 갖고 있으면 뭐하겠나. 장 선생을 통해 한국에 기증하려 하네”라고 했다. 장 감독은 “원로 지휘자의 소중한 뜻을 받들어 맬롯의 음악세계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는 23일 LA 윌셔 에벨 시어터에서 LAKPO의 제111회 정기연주회가 열린다. ‘정다운 가곡의 밤’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 이 연주회에서는 조씨와 장 감독, 윤임상 LAKPO 상임지휘자가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세 사람은 전체 3분가량의 ‘주기도문’을 연주회 레퍼토리에 포함시키는 방안 등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