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문건 유출 의혹… ‘금호 형제’ 갈등 다시 불붙나
입력 2014-02-04 02:33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박삼구 회장 비서실 자료를 몰래 빼낸 혐의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운전기사를 경찰에 고소했다. 상표권 분쟁 등 각종 소송에 이어 내부 비밀 자료까지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금호 형제’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3일 박삼구 회장의 일정 등이 담긴 문서를 외부로 빼돌린 혐의(방실 침입 및 배임수·증재)로 박찬구 회장의 운전기사인 A부장과 그룹 보안용역직원 B씨를 서울 종로경찰서에 고소했다. 박삼구 회장은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의 3남이고, 박찬구 회장은 4남이다.
그룹에 따르면 A부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내부 문건을 빼돌리기 위해 B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A부장의 부탁을 받은 B씨는 비서실 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박삼구 회장의 개인 일정이 담긴 문서를 몰래 촬영한 후 문자메시지 등을 이용해 외부로 전달했다. 그룹은 B씨가 2011년 11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80여회 비서실에 잠입해 자료를 유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B씨가 자술서를 통해 A부장으로부터 수십 차례 향응을 제공받았다고 진술했으며 추가적인 금품수수 여부는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밝혔다.
B씨가 자료를 빼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CCTV 화면도 공개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최근 한 월간지가 박삼구 회장의 ‘호화 외유’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며 개인 일정 등을 상세히 소개하자 자체 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2년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나간 데 이어 다시 보도가 되자 조사에 들어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비서실 CCTV를 확인해 B씨가 자료를 빼내는 장면을 포착해 자술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고소로 형제 간 갈등은 재점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9년 그룹 유동성 위기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진 양측은 채권단으로부터 분리경영 결정이 내려진 후에도 대립을 지속해 왔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박찬구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그룹의 정보 제공에서 시작됐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룹은 박찬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지분 매각을 늦추며 박삼구 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반박한다. 양측은 현재 상표권을 비롯한 10여건의 소송전도 치르고 있다.
특히 지난달 박찬구 회장에 대한 법원의 집행유예 판결 이후 형제 간 화해 무드가 조성될 수 있다는 관측은 이번 고소로 물 건너가게 됐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본 사건의 발단이 된 기사와 회사는 무관하다”며 “소장 내용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