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특별사면
입력 2014-02-04 01:36
#미국의 ‘사면 스캔들’ 하면 단골로 거론되는 인물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다. 2001년 1월 퇴임을 불과 2시간여 앞두고 탈세 등 혐의로 해외에 도피 중인 기업인 마크 리치를 사면한 것이 화근이었다. 클린턴에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낸 리치의 사면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클린턴은 뉴욕타임스에 ‘사면의 이유’라는 기고문을 보내 “대가성 사면이 아니라 정당한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파문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13년 1월 29일 단행한 특별사면을 놓고 신·구 정권이 충돌한 적이 있다. 이 대통령이 측근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을 사면 대상에 포함시키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에서 “부정부패와 비리 관련자들에 대해 사면을 강행한 것은 국민적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원칙에 따른 사면이었다고 강조했으나 여론은 박 당선인 편이었다.
지난해 10월에는 내란음모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2003년, 2005년 두 차례 사면 받은 것을 둘러싸고 여야가 격돌했다. 새누리당은 종북주의자들에 대한 노무현정부의 안일한 태도가 내란음모 사건의 씨앗이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야당은 터무니없는 공세라고 맞받아쳤다. 사면권을 남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선진국에선 사면권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추세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첫 임기 4년간 사면한 인원은 22명에 불과했고, 독일에선 지난 60년간 단 네 차례만 사면이 실시됐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설을 앞두고 5925명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박근혜정부의 첫 특사다. 대상자는 우발적인 생계형 범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이다. 사회지도층과 성폭력사범 등은 제외됐다. 사면권이 적정한 수준에서 행사된 것 같다. 민주당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시위와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 참가자들이 제외된 것은 유감’이라는 토를 달기는 했으나 “서민생계형 사범에 대한 특별사면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사면권이 무분별하게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임기 동안 이를 실천하면 ‘보은(報恩) 사면’ ‘측근 사면’이라는 민망한 표현도 사라질 듯하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