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산상봉, 北은 정치·군사 문제와 연계 말라
입력 2014-02-04 01:41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을 갖자는 우리 측 제의를 뒤늦게나마 수용한 것은 다행이다. 당초 설을 계기로 상봉행사를 갖자는 데 의견이 모아지다 북측이 응답을 미루면서 무산 가능성이 높았으나 실무접촉 성사로 다시 한번 기대를 갖게 됐다.
그러나 이산상봉이 실제로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우리 측은 지난달 27일 실무접촉을 제의하면서 상봉날짜를 오는 17∼22일로 못 박았었다. 이달 말 시작되는 키리졸브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이유로 무산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실무접촉이 늦어지면서 17∼22일 상봉에 합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측이 이달 하순 이후를 제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요한 것은 북한에게 진정성이 있느냐 여부다. 실무접촉에서 상봉날짜가 정해지더라도 북한이 이런저런 핑계로 못하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북한 행태였다. 지난해 9월에는 특별한 이유 설명도 없이 상봉 4일 전에 무산시킨 바 있다. 이번에는 한·미 군사훈련이라는 핑계거리가 있으니 또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른다. 한·미 양국의 군사행위 때문에 이산상봉이 안 된다는 식으로 국제사회에 선전전을 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5일로 예정된 실무접촉에선 이산상봉을 정치·군사적인 문제와 연계시키지 말 것을 북측에 분명히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이산상봉은 그야말로 인도적인 문제다. 생이별로 60년 이상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살아온 가족, 친척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주자는데 정치적, 군사적인 문제를 이유로 미적거리는 것은 반인륜적 행위다. 더구나 이산가족들은 대부분 고령이다. 남측 상봉 신청자 가운데 70대 이상이 80%가 넘는다. 매년 4000명가량이 세상을 뜨기 때문에 이들에겐 하루가 급하다.
북한은 지난달 상호 비방행위 중지,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중지, 핵 재난을 막기 위한 상호조치 등을 담은 이른바 ‘중대제안’을 내놓았다. 긴장 완화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해결점을 찾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회복이 전제돼야 한다. 이산상봉 하나 성사시키지 못하면서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정치·군사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겠는가.
북한이 진정으로 남한과의 관계개선을 원한다면 이산상봉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한·미 연합훈련이 연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유로 또다시 딴소리를 한다면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이산상봉 문제를 향후 남북관계 개선의 시금석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