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의구] 위안부 사죄와 이산상봉

입력 2014-02-04 01:35


지난달 30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는 ‘전쟁의 교훈과 영구평화 모색’이라는 주제로 안전보장이사회의 공개토론이 열렸다. 제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개최된 토론회에서는 과거사를 부인하고 재무장을 향해 치닫는 일본에 대한 주변국들의 성토가 잇따랐다.

북한의 이동일 유엔 차석대사도 발언을 자청해 “일본은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또다시 인류를 향해 죄를 저지르기 위해 군국주의 부활을 기도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때 야만적인 잔혹한 일을 저질렀다”면서 “일본이 저지른 일을 몇 십년이 지나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역사 피해 외면은 反 인륜

일본이 침략 행위를 부정하거나 의미를 희석하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어림없는 일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일협정으로 다 끝난 일’이라고 치부하는 행위는 아직 살아 있는 피해자들 가슴에 다시 대못을 박는 뻔뻔스러운 행동이다.

지난달 26일 황금자 할머니가 숨진 뒤 피해자 할머니는 이제 55명만 남았다. 우리 정부에 등록된 할머니 237명 가운데 이미 182명이 사망했다. 생존자 중 70대는 1명뿐이고 80대가 40명, 90대가 14명이다. 일본이 피해 당사자와 대면해 사죄할 시간이 길지 않은 셈이다. 대면 사죄의 기회를 놓치면 과거사 반성의 의미는 현저히 퇴색하게 된다.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떠나면 일본의 과거사가 묻히는 게 아니라 진정한 사죄의 기회가 영원히 매장된다.

일본과 우리 사이에 위안부 문제가 있다면 남북 사이에는 이산가족 문제가 있다. 두 문제는 전혀 다른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됐고 역사적 맥락도 사뭇 다르다. 하지만 참혹한 전쟁 속에 희생된 개인의 비극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피해자들이 아직 생존해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사죄를 거부하는 것이나 이산상봉을 가로막는 행위 모두 인륜에 반하는 것은 물론이다.

북한은 그동안 이산상봉에 미온적인 태도를 지속해 왔다. 일본의 가해행위에는 눈을 부릅뜨면서도 자신이 도발한 전쟁의 후유증 치유에는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소극적으로 나왔다. 그런 점에서 이 대사 발언의 잣대는 이중적이다. 북한은 지난해 추석과 올 설 우리 정부의 상봉 행사 제의를 거절했다. 대남 통지문에는 “인도주의적 사업 추진을 통해 민족 분열의 아픔을 다소나마 덜어주려는 공화국의 입장은 시종일관하다”고 밝히면서도 남측에 상봉 무산의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반복했다.

생존자 있을 때 문제 풀어야

북한이 이산상봉에 소극적인 데는 휴머니즘도 계급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이념이나 체제의 차이 외에 여러 기술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주의적 사안은 정치적, 사회적 조건을 떠나 우선 길을 트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고령화된 이산 당사자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시급성이 더하다. 1988년 이후 정부에 등록한 이산상봉 신청자 12만9264명 가운데 45%인 5만7784명이 이미 세상을 떴다. 생존자 7만1480명 중에도 80세 이상이 53%나 된다.

‘좋은 계절에 보자’거나 ‘편리한 대로 상봉 시기를 잡자’는 식의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계절이 따로 있을 수 없고, 편리한 때가 아니라 가장 이른 때를 골라야 한다. 이산 1세대가 퇴장하면 이산가족의 아픔은 영구 미제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북한이 3일 이산상봉 접촉 제의에 호응해 왔다. 이제부터라도 이산상봉과 교류를 반드시 정착시켜야 한다. 이산의 비극은 아직 더운 피가 흐르는 현실이다. 이산 세대가 다 사라져 아픈 역사가 박제가 되기 전에 남북이 팔을 걷어야 한다.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